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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출범, 휴머니즘 뒤에 숨은 국가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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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출범, 휴머니즘 뒤에 숨은 국가주의를 경계한다

[최광희의 휘뚜루 마뚜루 리뷰] <찰리 윌슨의 전쟁>과 <밴티지 포인트>

얼마전 개봉한 마이크 니콜스의 <찰리 윌슨의 전쟁>은, 앞으로는 휴머니즘의 얼굴을 하고 뒤로는 열심히 주판알을 퉁기고 있는 국가주의의 실체를 비웃는다. 영화는 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아프간 반군들에게 무기를 대주는 데 간여한 한 하원의원의 실화를 재구성해 보여준다. TV 시리즈 <웨스트 윙>에서 노골적으로 민주당 출신을 대통령으로 설정한 바 있는 아론 소킨이 각본을 썼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역시 다분히 반(反)공화당적인 냄새가 풍긴다. 마약과 집단혼음을 즐기는 방탕한 하원의원 찰리 윌슨(톰 행크스)과 그와 가끔 자는 사이인 기독교 근본주의자 조앤 헤링(줄리아 로버츠)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새삼스레 충격을 먹고, 부지런히 애국주의적(?) 음모를 펼친다. 명분 없이 전쟁에 공개 개입할 수 없었던 터라, 아프간 반군에게 미제 무기가 아닌 소련제 무기를 사 주는 편법으로 몰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이들의 아이디어였다.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도록 만들기 위해 찰리 윌슨이 동원한 방식은 간단하다. 팔 다리가 잘려 신음하는 아프간 난민들의 참경을 하원의장에게 보여주고 '이런 몹쓸 놈들'이라는 인도주의적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찰리 윌슨의 전쟁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제스처에 불과하다. 뒤에 도사린 계산은 소련의 팽창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중동을 사수해야 하는 미국의 노림수였다. 그러니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폐허가 된 땅의 복구에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게다가 20여 년 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구 소련이 했던 것처럼 그 땅을 공격했다. 어쨌든, 정치 풍자극으로서의 이 영화가 비웃는 지점은 패권주의의 추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휴머니즘이 '동원'되는 풍경이다. 국가는 휴머니즘의 뒤에 숨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미국적 외교의 근간일지도 모른다.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찰리 윌슨의 전쟁> 역시 미국의 마지막 양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찰리 윌슨과 같은 날라리 하원의원에게도 살아 있는 정의로운 측은지심, 아프간의 전후 복구를 걱정하는 CIA 요원의 의리 같은 게 아니겠냐고, 아론 소킨은 은근히 말하는 듯 하다. 이런 그의 정치적 관점은 <웨스트 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정리하자면, 그의 청사진 속의 미국은 패권을 갖되 그 힘을 합리적으로 구사하는 온화한 맏형의 이미지다. 그렇지 못한 미국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그의 무의식 속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아주 자연스럽게 패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밴티지 포인트

대놓고 미국 대통령이 저격당한다는 설정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적의까지도 상품화한 <밴티지 포인트>에 비하면, 그나마 <찰리 윌슨의 전쟁>은 매우 세련된 정치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남다르게 보이려고 하는 형식적인 치장에 가깝되, 내용적으로는 크게 쓸모 없어 보이는 다중 시점이라는 틀을 동원하고 있는 <밴티지 포인트>는 짐짓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 노선에 대한 반성의 시늉을 펼쳐 보인다. 대통령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다섯 차례가 넘게(다 세보진 못했지만 아주 자주 나온다)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린 맞아도 싸'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건 말그대로 자학의 시늉이다. <밴티지 포인트>는 결국 세계 평화를 이루는 것은 평범한 이들의 가슴 속에 놓여 있는 착한 심성이라는 성선설적 마무리를 선보인다. 미국 대통령을 쏘아 죽이려는 세력들도, 암살 위협에 놓인 대통령도, 그 사이에 목숨을 걸고 암살의 배후를 추격하는 경호원도 알고 보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그걸, 누가 모르나? 반 테러리즘으로 포장된 국가 패권주의의 얼굴에 살풋 미소가 번진다. 우린 다 사람이 아니냐고. 나도 이렇게 반성하고 있으니 너도 반성하라고. 우리를 그만 욕하라고. 그러니 제발이지 때리는 대로 맞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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