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비서관의 미국 박사 학위는 목회 활동을 하는 이들을 겨냥해 개설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 D. Min)'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명박 정부 최고의 운하 전문가를 자처해온 추 비서관의 박사 학위 논문이 운하와는 거리가 먼 '신학'이라는 것도 눈에 띄지만, 그 논문마저도 학문 업적과는 거리가 먼 것.
미국 박사 학위 논문을 '한글'로 작성?
<프레시안>이 세계적인 석·박사 학위 논문 검색 데이터베이스(DB) PQDT(ProQuest Dissertations and Theses)에서 찾아본 결과, 추부길(Choo, Bookil) 비서관이 지난 2005년 작성해, 2006년 학위를 받은 미국 리젠트대학의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Principles and practice of marriage enrichment program to enhance spiritual maturation)은 영어가 아닌 '한글' 논문이었다.
PQDT가 리젠트 대학으로부터 제공받아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놓은 232쪽 분량의 논문은 제목, 요약, 목차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한글로 작성돼 있다. PQDT는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 1440곳 대학에서 수여하는 석·박사 논문을 원문 제공하는 논문 검색 DB이다.
논문 정보를 보면 언어(Language)가 한국어(Korean)라고 명시돼 있고, 실제 논문을 출력해보면 감사의 글을 비롯한 본문이 한글로 돼 있다. 논문이 한글로 작성된 탓에 논문 심사 교수도 한글을 아는 한국계 교수였다. 심사위원장을 제외한 2인의 심사위원은 버지니아비치 은혜교회 문모(2006년 2월 7일) 목사와 원모(2005년 4월 26일)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교수였다. 문 목사는 현재 리젠트대학 신학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렇게 추 비서관처럼 이 리젠트대학 신학대학에서 한글 논문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2000년대 들어 총 109명이나 된다. 2004년부터는 매년 약 20명이 꾸준히 한글 논문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추 비서관이 박사 학위를 받은 2006년에도 한국인 20명이 한글 논문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추 비서관의 논문 심사 교수였던 문 목사는 2004년부터 이렇게 한 해 20편이나 되는 한글 논문 심사를 전담했다. 한 국내 연구자는 "신학 대학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한 교수가 한 해 20명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심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상적인 논문 지도·심사가 이뤄졌다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1주일만 대학 출석하면 OK!
도대체 리젠트대학 신학대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박사학위를 주는 것일까? 이 대학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렇게 미국 현지에서 한글 논문으로 추 내정자와 같은 '박사'가 해마다 수십 명씩 양산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현지 학교를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의 홈페이지를 보면,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으려는 학생은 공식적으로 매년 가을 1주일간만 미국 현지 대학에 출석하면 된다. 물론 수업은 한 학기 내내 진행되지만, 온라인 수강 등이 가능한 탓이다. 이 대학은 "군대, 외국에서 목회를 보는 학생에게는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코스를 이수한 학생은 인터뷰와 같은 시험을 본 다음, 약 1년간에 걸쳐 목회를 하면서 논문을 작성한다. 물론 이 논문 작성 기간에도 학교에는 출석할 필요가 없다. 이 대학은 "논문 심사, 졸업 때만 학교에 오면 된다"며 "바쁜 목회자를 위한 효과적인 온라인 교육, 최소한의 등교가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이런 리젠트 대학의 목회학 박사 과정은 한국의 일부 신학대학에도 개설돼 있다. 이미 국내외 대학의 목회학 박사 과정이 부실한 학위 과정 운영으로 '박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박사' 목사는 이런 식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미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리젠트대학 관계자는 26일 <프레시안>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한국어로 강의를 듣고, 논문을 쓰는 학생을 위해서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신학교협의회(ATS : Association Theological Schools)가 이런 학위 남발에 제동을 건 결과다.
"이런 학위를 경력 맨 앞엔 내세워서야…"
미국의 한 신학대학 유학생은 "추 비서관이 받았다는 목회학 박사 학위는 일종의 평생 교육 과정 이런 것과 비슷하다"며 "통상적인 박사 학위처럼 학문 업적에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이 있는 목사들이 소정의 코스를 이수하고 현장 경험을 토대로 논문을 내면 주는 학위"라고 설명했다.
그는 "논문 작성은 물론 강의도 한글로 이뤄지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젠트대학에서 한국 목사 중 외국 박사 학위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을 염두에 두고 한국계 교수를 내세워 학생을 유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연륜, 경륜이 있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이런 박사 학위를 경력의 맨 앞에 내세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추 비서관의 처신을 꼬집었다.
추부길, "학위 자체는 정당하게 받은 것"
한편, 이런 지적에 대해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은 28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논문을 한글로 쓴 게 맞다"며 "그러나 리젠트대학에 그 한글 논문을 심사할 한국계 교수가 있고, 심사를 위해 논문의 상당 부분이 영어로 번역돼 심사 교수에게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추 비서관은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자 미국에 얼마나 체류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인 수강생이 많아서 리젠트대학에서 인증을 받은 교수가 직접 한국에서 강의를 했다"며 "온라인 강의를 들은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위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추 비서관은 25일 <프레시안>이 처음 해명 요구를 했을 때, "리젠트대학에 한글 논문과 별도로 영어 논문을 제출했다"고 사실과 다르게 답했다. 이에 대해 그는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글 논문 전체가 번역돼 리젠트대학으로 제출되는 줄 알았었다"며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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