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한테 못 이겨요. 감당 안 되죠. 밥도 제때 못 먹고, 조금만 실수해도 뒤에 가서 엄청 욕을 먹어요. '미친년 이런 것도 하나 못하냐'고. (…)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는 주문 받을 때 잘 못 들으면 '네가 개야? 사람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 이런 말을 반복했어요."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현장실천위원회가 지난 2002년 펴낸 '청소년 노동 실태 보고서'에 나온 사례 가운데 하나다. 비인간적인 '나쁜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설움과 모욕을 증언한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도 편의점에서, 주유소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바생(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의미함)'들은 법에 보장된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이 일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떼이는 일조차 일어난다.
알바생의 대부분은 청소년이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용돈을 벌기 위해, 나중에 그 업체의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생계 문제 때문에 상시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부모와 교사는 "공부에 방해되니 하지 말라"고만 이야기 한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있는 셈인 상당수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상의할 곳조차 찾기가 힘들다.
정부도, 시민사회단체도, 노동운동 진영도 이제야 조금씩 비정규직 (어른)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 노동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청소년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어디쯤에 있을까?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청소년 노동의 현 실태와 대응책을 모색했다.
청소년 노동, 늘어만 가는데 정부는 규모 파악조차 '감감'
청소년의 노동경험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 YMCA 조사에 따르면 30.4%, 2002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41.3%, 같은 해 참여연대 조사에 따르면 45.3%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청소년 노동은 주로 서비스·유통·판매직에 집중돼 있다. 최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을 보면, 중학생의 경우 '전단지 돌리기', 고등학생은 '음식점 카운터 및 서빙·배달'이 가장 많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공인노무사 이수정 씨는 "서비스·유통·판매직은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가장 빠르게 비정규직화가 진행되는 직종으로 이 부분에 청소년 아르바이트가 집중된 것은 청소년 노동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조건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 청소년 노동의 실태가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수정 노무사는 "청소년 노동은 비공식 영역에서만 논의만 돼 왔으며 아직 노동시장에서 가시화돼 있지 않지만 '88만 원 세대'보다 더 참담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목격하는 '당당한 위법'의 현실
정부와 노동운동 진영, 학교가 나서지 않는 가운데 청소년들은 첫 사회 경험에서부터 '법이 버젓이 위반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야간휴일 노동 금지 위반, 임금 체불 등 다양한 '위법'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직접 나와 청소년 노동의 실태를 증언한 '또또' 군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주유소에서 근로계약서는 보지도 못했고 일주일 만에 잘렸는데 임금도 떼였다. 주휴수당에 초과수당까지 계산하면 20만 원 넘게 받아야 했는데 내가 실수한 것이 많다며 2만5000원밖에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여름 방학을 대비해 노동부가 실시한 점검 결과를 보면, 600개 업체 가운데 68.3%인 410개 사업장에서 715건의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하지만 위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처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아르바이트생 관련 법 위반 사업장 244개를 적발했지만 10개 업소만이 사법처리됐을 뿐이었다.'
알바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첫 마디는? "부모님도 아시니?"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한 마음만 가득 쌓일 뿐 별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떼인 임금을 받아내는 절차 등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생님과 부모님 모두 아르바이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친구들이 유일한 상의처일 뿐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트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교육위원회가 지난 1월 참교육 실천대회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 3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냐'는 질문에 37.9%(142명)가 '부모님께 알리고 하는지를 확인한다'고 대답했다.
비록 '임금 등 근로조건을 함께 확인한다'는 교사가 37.3%(140명)로 이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긴 했지만 이수정 노무사는 "설문조사 대상이 전교조 소속의 교사 중에서도 참교육 실천대회에 참여한 교사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교사가 학습권을 침해하는 노동권에 대한 인정에 다소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책은? 사실상 '없다'
이 같은 청소년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청소년근로 보호 종합대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수정 노무사는 "시행 3년이 지나도록 기존의 일회성 단속 위주의 보호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형식적인 캠페인만 몇 차례 진행됐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정부는 또 중고등학교 교사 및 당사자인 청소년 외에도 이들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에 대한 교육까지 진행하겠다고 발표만 했을 뿐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내용이나 세부계획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 및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노동인권교육이 교사 개개인의 의지에만 기대기는 어려운 상황인만큼 학교 현장에서도 독일, 프랑스와 같이 정규 과정에 노동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치해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전교조도 경제교과서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나 실업위원회 중심 노동인권교육을 넘어 교과내용과 교과과정 개편에 적극적 대응을 위해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노조 조직율의 제고 및 단체협약 확대 적용 등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노동조합 조직율이 85%인 스웨덴은 청소년 노동자가 소속된 사업장에 대부분 노조가 있어서 노조가 생산현장의 노동실태를 상시적으로 지켜보며 노동기본권 침해 여부를 감시한다"며 "이런 조건이 되면, 청소년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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