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 법 논란이 종교계로 확산되고 있다. 장기화되는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와 관련해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을 신자로 둔 기독교계 일부 단체들이 지난해 '기독교대책위원회'를 결성한 데 이어 이번엔 천주교가 "비정규직법 재개정" 목소리를 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11일 성명을 통해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해고 사태를 불러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 "노사 양측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이 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 해 그 이름에 걸맞게 개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비정규직의 노동의 가치와 권리도 존중돼야"
천주교 주교회의는 "오늘날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여성, 청소년, 고령자, 장애인, 외국인 및 비숙련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라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품어 안고 공동선을 위해 어떤 합의를 이뤄내느냐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가톨릭 교회는 노동은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원칙에 다라 노동자들이 인격적 존재로 존중되고 가족 부양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 보장돼야 함을 강조해 왔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권리는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이름으로 발표된 이번 성명은 기독교와 달리 단일한 체계로 이뤄져있는 천주교의 고위 관계자들이 비정규직법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는 의미가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교회헌장과 교회법에 규정된 공식기구로 현재 한국 주교회의는 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18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부터 정규직 전환해야"
주교회의는 "연대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비정규 노동자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이를 위해 △정부는 직업훈련 및 직업 안전망을 제도적으로 확충해 극단적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업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적정한 임금과 고용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대기업 경영자들에게는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몫을 공정하게 보장해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적당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자 기업인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에서부터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신자가 경영하는 기업인 이랜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정규직법 갈등'이 벌어진 것을 다분히 염두에 둔 언급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이들은 "조합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차별해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들은 또 "한국 천주교회의 고용 관행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교구와 본당, 기타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오는 7월이면 비정규직법은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적용 된다.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행된 300인 이상의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기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등 부작용이 쏟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나온 천주교계의 목소리가 어떤 영향을 불러올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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