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에 이어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친기업'(pro-business)이다. 듣기에 그럴싸하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가 낮은 수준의 구호에 머무르면서 무분별한 개발 정책의 추진, 각종 사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배제하는 '초단기 실적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아니다 다를까, 대운하 건설, 통신비 인하, 영어 교육 등 차기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 과제에서 벌써 그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 친기업은? 이명박 당선인은 스스로 친기업 대통령임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단체와 조·중·동 같은 신문들은 쌍수를 들어 친기업 이명박 정부를 환영하고 있다. 정부가 고용과 가치 창출 같은 경제의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과 친한 게 문제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경제만 살리면 무엇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쓰나미 같은 여론이 있는 판에 친기업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함직도 하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친기업은 반민주주의적이며 반자본주의적 생각이다.
친기업은 왜 반민주주의적인가? 정치적 불평등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기업 집단은 보유하고 있는 자원, 사회적 위상, 법적 특전 등의 측면에서 개개 시민들보다, 또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기업 집단보다 훨씬 큰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더 많은 부는 곧 더 많은 권력과 이어지기 때문에 친기업은 정치적 불평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은 일정하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공평한 조정자이며 따라서 강력한 힘을 소유한 사적 집단에 대한 제어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친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기업/기업 집단이나 부유한 계급 일반에 편향된 정책을 편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공공적 신뢰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친기업은 왜 반자본주의적인가? 경쟁과 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공평한 심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자유시장주의자는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 수단를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왜곡된 형태의 보호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기업은 경제 성장, 고용 창출 등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상호 밀접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대체로 특정 기업/기업 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통로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한편 정부는 경제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이나 역량에서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뒤쳐지기 때문에 기업의 논리에 포획되기 쉽다. 따라서 정부의 결정은 특정 기업 또는 기업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요소들은 공정한 경쟁과 선택의 자유를 해치는 반자본주의적 결과를 낳는 것이다.
친기업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친시장'(pro-market)이 그 답이다.
친시장은 무엇인가? 친시장의 근본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다. 자유주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경제는 권력에는 한계가 있고 남용되는 권력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견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 폐지, 강한 반독점 정책, 기업의 로비에 단호한 정치, 기업과 관료들의 부패에 대한 엄격한 법적 조치, 조세정의의 실현 등등이 친시장 정책의 핵심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개혁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지난 2003년 6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국제적 권위와 신뢰를 인정받는 <이코노미스트>가 창간 160주년을 맞아 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특집기사의 핵심내용이다. 그 기사는 친기업적 사고와 정책이 불러일으키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짚어보는 취지의 특집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조ㆍ중ㆍ동 등이 친기업 찬가를 부를 때 시중에는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절망적인 농담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친기업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대가 나라를 뒤엎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더 확대되는 형태의 극히 왜곡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런 것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정부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도 종래에는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족 하나. "기업이 자본의 힘을 이용해 일종의 특권 체제를 만들어 정부와 법, 즉 국가에 도전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분쇄되어야 한다." 이미 200여 년 전쯤에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이 기업의 사회적 지배력 확대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그것도 대기업의 특권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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