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 정조국의 부상에다 그를 대신할 조재진도 장염으로 입원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거 3인방(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이 506분 동안의 '골 가뭄' 해갈과 더불어 식을 대로 식은 '축구 열기'를 지피기 위해 허정무호에 합류해 오는 6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 출격할 예정이다.
세 명의 공통점은 '허정무의 아이들'이었다는 것. 지난 1999년 허정무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던 이영표를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정해성 코치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를 하자 건국대 정종덕 감독은 제자 이영표를 추천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뒤에 숨겨진 무서운 승부근성, 쉴 새없이 그라운드를 뛰어 다니는 체력에다 드리블 능력까지 갖춘 '숨은 진주' 이영표는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좌(左) 영표- 우(右) 진섭' 이란 말도 생겨났다.
박지성은 이영표가 부상으로 잠깐 빠졌을 때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올림픽 대표팀과 명지대의 연습경기에서 그를 눈 여겨 봤던 허 감독은 태극마크를 단 뒤 일취월장하는 박지성의 기량을 지켜보며 흐뭇해 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은 탁월한 심폐기능이 바탕이 된 지구력과 재치있는 패싱능력으로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해가기 시작했기 때문.
청소년 대표팀을 거쳤던 설기현은 박지성, 이영표 보다는 다소 쉽게 허 감독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표팀에서 설기현은 오른쪽 날개로 뛰며 벨기에 프로축구 진출의 기틀을 마련했다. 허 감독을 흡족하게 했던 그의 장점은 오래 달리기에서 1등을 맡아서 할 정도로 뛰어난 지구력. 유럽의 공격수를 연상시키는 돌파력과 파워 등 선이 굵은 스타일의 공격을 할 줄 안다는 것도 설기현의 무기지만, 지구력이 뒷받침 된 수비가담 능력은 그의 진짜 무기였다. 이는 2002년 월드컵에서도 설기현이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강한 신임을 받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몇 년 전 허 감독(당시 용인 축구센터 총감독)에게 네덜란드에서 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한 선수가 나에게 '너 인삼 좀 먹어야겠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부터 이렇게 살살 뛰면 안 되겠구나는 생각에 이 악물고 체력훈련도 하고 경기에 임했죠." '진돗개'라는 별명을 가진 허 감독다운 답변이었다. 이 같은 그의 승부근성, 체력, 성실성에 대한 강한 신념은 1990년대 후반 그가 대표팀에 불러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에게서 고스란히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일 귀국한 이영표는 "허 감독님과는 올림픽 대표팀에서 이겼던 기억밖에 없다"고 활짝 웃었다. 이영표와 같이 귀국한 설기현은 "예전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골을 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4일 귀국하는 박지성과 함께 이영표와 설기현이 투르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지 주목된다. 이젠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훌쩍 커버린 그들이 허정무 감독에게 보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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