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타결'을 목표로 싸워왔지만 해를 넘기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두 번째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유통업체의 대목인 설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불매운동의 바람을 만들어보자는 목표 아래 시작된 총력투쟁이다. 이석행 위원장과의 간담회를 하루 전날 파기한 이명박 당선인에 맞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은 설 연휴 직전인 3일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지난 1일 서울 중랑구 홈에버 면목점 앞의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았다. 찬 시멘트 바닥에 앉은 약 200명의 기세는 예전만 못했다. 지난 여름, 민주노총의 집회가 잡히면 모든 문이 차단되고 영업이 중단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홈에버 면목점도 일부 경찰과 용역 경비원이 배치되기는 했으나 영업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이랜드 사태 해결의 최대 난관?
이날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명박 당선인이다.
지난해 말 회사가 먼저 "연내 타결을 원한다"며 양보안을 내놓아 노동조합 교섭위원을 놀래키기도 했었다. 물론 대통령 선거 전의 일이다. 그랬던 회사는 당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분명해지자 말을 바꿨다. "대선 끝나고 교섭을 다시 하자"고 했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명박이 당선되면서 회사 쪽이 더 강하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 당선인이 이랜드 사태에 대해 "법을 지키지 않는 노동조합의 과도한 투쟁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에는 사 측은 교섭조차 피했다.
이랜드일반노조와 홈에버 리테일의 교섭은 중단된 지 오래다. 대선 전 마지막 교섭을 끝으로 50일이 넘도록 한 번도 마주 앉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 다시 교섭을 재개한 뉴코아 노사도 회사가 더 '아쉬울 건 없다'는 태도다. 이미 지난해 12월 대폭 물러난 양보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바 있는 뉴코아노조는 최근 留릿?더 물러선 수정안을 교섭장에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뉴코아 측은 그 안마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
그 와중에 대선을 전후해 양 노조의 간부 33명은 징계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교섭위원 대부분이 해고를 당하면서 "이랜드 측이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사실상 포기하고 '끝까지 가보자'는 전략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이랜드, '대선 틈타' 노조 지도부 33명 집단 해고)
현대차노조 등 생계비 주고 '함께'하겠다더니 외면하는 대기업 정규직노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생계도 걱정도 장기화되고 있다. 어느덧 두 번째로 명절이 파업 중에 찾아왔다.
지난 여름 민주노총은 9월부터 12월까지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대의원대회를 통해 '결의'했지만 예정됐던 4번의 생계비 지급 가운데 현재까지 2.5번 분밖에 받지 못했다. 특히 현대차노조 등 일부 대기업 정규직노조는 아직까지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이랜드 생계비 지원한다"던 민주노총, 말로만?)
조합원들의 생계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파업기금도 동이 난지 오래다. 이날 홈에버 면목점 앞에서는 기금 마련 '떡 장사판'이 차려지기도 했다.
불매운동도 그다지 성과가 없다. 뉴코아와 홈에버 등 유통업체 매장의 경우 불매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랜드 그룹은 후아유, 푸마 등 워낙 다양한 의류 브랜드와 외식업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랜드 그룹이 소유한 회사 목록 보기)
그래도 희망은 있다
차가운 칼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꾸준히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익명으로 100만 원, 200만 원씩 큰 돈을 보내주는 사람을 볼 때마다 오랜 싸움으로 지쳐가는 조합원들이 '다시 해보자'고 말한단다.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에 앞서 출국했던 박성수 이랜드 회장도 최근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 증인에 불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이 다른 사업장에 비하면 이랜드 비정규직의 싸움은 복 받은 편이다. 여론도 호의적일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지원도 이례적으로 많이 받았다. 민주노총이 개별 사업장의 문제로 대의원대회까지 열고 총력투쟁을 벌인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일부 대기업 정규직노조는 여전히 '모른 척'하고 있기는 하나 십시일반 돈도 모아줬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그래서 이랜드 투쟁은 반드시 더 이겨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싸움마저도 패배로 끝난다면 민주노총은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이명박 정부와의 '대격돌'에서 민주노총이 링 위에 아예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실제 이명박 당선인은 취임도 전부터 민주노총 배제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밖에서는 답답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조합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저녁 7시가 훌쩍 넘긴 시간, 이 말을 끝으로 이들은 살을 에는 추위와 짙어가는 어둠 속 문화제를 마치고 또 다시 '매장 봉쇄 투쟁'을 벌이기 위해 홈에버 면목점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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