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24일 서울 강서구 88체육관에서 600여 명의 대의원이 모인 가운데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재정혁신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 유회 전통'은 여전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벌써부터 몰려오고 있는 '이명박 쓰나미'를 시원하고 잔잔한 바람으로 바꾸는 승리를 만들어 보자"며 총연맹이 산하연맹과 지역본부, 산별노조를 포괄해 '이명박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상시적인 투쟁본부 체계로 전환하는 사업계획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개회 6시간 여 만인 밤 9시, 성원 부족으로 '투쟁본부 전환' 등이 담긴 사업계획은 논의조차 못하고 유회됐다.
만성 적자에 직선제까지 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그간 근본적인 적자 재정구조 속에 운영돼 왔다. 조합원으로부터 걷는 의무금 수입이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맹비를 납부한 조합원은 53만 명이었다. 민주노총이 밝힌 조합원수 80만 가운데 66% 수준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정부 보조금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무금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1월 현재 5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으며 돈이 없어 총연맹 상근자들이 몇 개월째 임금체불을 겪기도 했다. 상황은 2008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2009년에는 처음으로 민주노총의 임원을 조합원 전체의 투표로 뽑는 직선제를 치러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적자의 폭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2년 만에 간신히 재정혁신안 통과…정부보조금 문제는 '유보'
때문에 민주노총은 현재 1000원씩인 연맹비를 다음달부터 300원 인상해 1300원으로 하고, 내년에는 100원을 더 올리는 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미 2년 전 중앙위원회에서 500원 인상안이 통과된 바 있다"며 "몇 년 동안 토론하고 준비했던 것"이라고 통과를 호소했다.
일부 "조합원 숫자를 늘릴 생각을 해야지 의무금만 인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연맹이나 지역본부의 재정 상황도 좋지 못하다" 등의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투표 결과 542명의 참석 대의원 가운데 387명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됐다.
정률제로 바꾸는 안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의무금을 정률제로 바꾸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같은 정규직 조합원 사이에도 존재하는 임금 격차를 의무금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또 조합원의 임금이 인상될수록 민주노총의 수입도 늘어나 안정적 재정 구조의 기반이 될 것으로 민주노총은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의 '재정혁신안'은 지난 2006년부터 대의원대회와 지난해 두 번의 대의원대회에서 상정만 되고 성원 부족으로 인한 대회 유예 및 무산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었다. 처음 연맹비 인상이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이후 2년 만에 비로소 현실화된 것이다.
뜨거운 논란이 내부에서 존재하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문제는 기타 안건으로 유보된 뒤 대회가 유회되면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끝은 항상 유회?
이날 대의원대회의 끝은 최근 몇 년간 그래왔듯이 '성원 부족으로 인한 유회'였다. 지난해 여름 이랜드 투쟁 결의를 위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 통과'라는 편법으로 대회를 마쳤던 것을 제외하면 계획된 안건을 모두 처리하고 '종료'된 대의원대회는 최근 몇 년 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도 올라온 6개의 안건 가운데 4개 안건은 논의를 시작조차 못했다. 지난해 사업 평가서에 담긴 문장과 문구를 놓고 지루한 공방을 거듭하다 정족수 489명 가운데 58명이 부족해 유회된 것.
이날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대의원대회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각종 연대사 및 축사마저 생략한 채 대회가 진행됐고 이석행 위원장도 대회사를 통해 "성원 부족으로 중앙위원회가 유회된 이후 떨리는 가슴으로 몇날 며칠을 학수고대했다"며 "그동안 의결기구조차 사수하지 못하고 끙끙대 왔지만 나는 여러분을 믿는다"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제는 안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데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불참 대의원 및 중간에 자리를 뜨는 대의원 명단을 공개하겠다고도 했고, 이번 대의원대회에 앞서서는 전국을 돌며 안건 설명회도 가졌지만 역부족이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사전에 각 연맹과 지역본부에서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얘기하려는 것이 문제"라며 "근본적으로 대의원대회의 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