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앞.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세리더십센터(소장 양승함 교수)' 초청으로 연세대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을 듣기 위해서다. 리더십센터 관계자는 "1천3백여명이 수강을 신청해, 1천2백명 가량이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백주년 기념관이 9백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은 초만원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대통령, 연세대서 <변화의 시대, 새로운리더십>이란 주제로 강연**
신분확인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일군의 학생들은 강연을 들으러 온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그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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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영씨(사회계열, 1학년)는 "민간인이 대통령을 직접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마침 학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강연수강을 신청하게 됐다"며 "수업 대신에 온 만큼, 대통령이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해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또다른 한 남학생은 "수업조교가 '깜짝 놀랄 일'이 있으니 학교로 빨리 오라는 연락을 했다"며 "우연찮게 대통령의 강연을 듣게 되어, 강연 내용이 뭔지 잘 모르지만 괜히 흥분된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 특강은 리더십센터에서 개설한 '리더십 이론' 강의를 듣는 1백60여명의 학생들이 노대통령 직무정지 기간중 특강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에 헌재 판결후 학교측이 다시금 '1일 강사'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특강에는 김수환 추기경, 윤관 전대법원장, 이만섭 전국회의장, 제임스 레이니 전주한미대사 등이 강사로 참여했었다.
***강연장 밖, 또다른 연세인들의 노무현 대통령 비판 시위 진행**
이처럼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룬 백주년 기념관 앞에 한편에선 20여명의 학생들이 피켓과 선전물, 대형 현수막을 들고 구호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들은 노대통령의 강연을 듣기 위해 온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에게 할 말이 많다"고 하는 또다른 연세인들이었다. 주로 학생회 간부와 민주노동당 당원, 시민사회단체 학생회원으로 활동을 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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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 이라크 파병 ▲ 국가보안법 등 현 정권이 골치아프게 여기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었다.
배진우(25)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은 "강연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 이외에도 학내에 또다른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피켓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20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강연 소식을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피켓과 현수막 등을 제작했다고 한다. 부랴부랴 준비한 소규모 집회지만, 이들의 주장은 일목요연했고 정리돼 있었다.
이나라(24, 사학과)씨는 "대통령 탄핵 사태때 수구세력에 대한 분노로 '민주주의 깃발'을 들었다"면서 "국민이 노무현대통령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었는데, 정작 대통령이 지난 집권 1년간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던 과오를 반성할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무엇보다 부도덕한 전쟁인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해 파병을 추진하는 노대통령의 모습은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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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임(22, 간호학과)씨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있어 노대통령의 모순된 태도를 성토했다.
석씨는 "11기 한총련 의장인 정재욱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3일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며 "정 의장이 구속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석씨는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과거 인권변호사 경력을 이야기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긍정적 발언을 했지만, 집권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는커녕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중이거나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파병, 국가보안법존치하는 노대통령, 리더십-민주주의를 논하지 말라"**
민주노동당 연세대 학생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 특강과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성명은 "대다수의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국민들이 미국의 더러운 이라크 침략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뜻은 이라크 파병계획을 철회하고 대등한 한미동맹관계를 만들어가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이러한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리더십'의 부재"라며 "이곳에서 '리더십'을 논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날 강연 강연 주제가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인 점을 빗댄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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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은 또 11기 한총련 의장 정재욱씨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건을 언급하며 "대통령 후보시절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나몰라라 하는 이중성을 비판한다"며 "국가보안법을 폐지 하지 않은 이상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말라"고 성토했다.
1천2백여명의 교직원 및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이 진행되는 백주년 기념관 바깥에서 '또다른' 연세인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과연 노대통령이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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