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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보았다면, 대책을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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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보았다면, 대책을 요구하라"

[화제의 책] 마이크 데이비스의 <조류독감>

조류 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 흔히 '조류독감'으로 불리는 질병이 귀에 익은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닭, 오리를 학살하던 이 AI가 10년 전인 1997년 처음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은 뒤, 수많은 전문가들이 전 세계 전염병 대유행(pandemic)을 경고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재앙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재앙이 인류를 비켜간 것일까?

마이크 데이비스의 <조류독감>(정병선 옮김, 돌베개 펴냄)은 이런 낙관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지금도 동아시아의 어느 습지에서 똬리를 튼 온갖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면서 호시탐탐 수십억 명에 이르는 새로운 숙주를 노리고 있다. 재앙은 비켜간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2008년, AI 전염병 대유행 사태?

실제로 많은 과학자, 의학자가 2008~2010년의 인플루엔자 전염병 대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인플루엔자 전염병 대유행은 1918년(4000만~1억 명 사망), 1957년(200만 명 사망), 1968년(70만 명 사망) 등 3번 발생했다. 2008년은 마지막으로 전염병 대유행이 찾아온 1968년부터 정확히 40년 되는 해이다.

30~40년은 종(種) 간 경계를 넘어선 AI 바이러스가 인체 안에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맞바꾸는 과정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능력을 획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많은 과학자, 의학자가 2008~2010년을 전염병 대유행 시기로 꼽는 것은 이런 사정 탓이다.

지금 전염병 대유행이 지구를 덮치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까? 20세기 최악의 인플루엔자 전염병 대유행이 발생한 1918년 사망자 수(4000~1억 명)를 오늘날의 인구에 대입시켜 보면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최대 3억2500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런 예상치를 듣고 대다수 사람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지난 100년간 의학 수준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단순히 인구를 비교함으로써 전염병 희생자를 추정한단 말인가? 그러나 데이비스가 이 책에서 인용한 세계 최고 전염병 전문가의 의견은 비관적이다. 1918년과 2008년을 비교했을 때, 적어도 인플루엔자 전염병 대유행과 관련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상황은 더 나빠졌다.

1918~2008년, 상황은 더 나빠졌다
▲ <조류독감>(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하나씩 살펴보자. 현재 인류는 AI를 치료할 수 있는 약(타미플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때 공급되지 못한다면 약은 있으나 마나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전 국민의 2%가 복용할 수 있는 100만 명분을 비축한 상태다. 고작 이런 준비로는 전염병 대유행이 닥쳤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하다.

나머지 상황은 1918년과 다를 게 없다. 당장 2003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의 유행 때를 회고해 보자. 약 8개월 동안 사스가 전 세계 26개국 약 8500명을 공격하는 동안 100년간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 의학은 속수무책이었다.

사스를 물리친 것은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였다. "주로 19세기 과학에 기원을 두고 있는 공중보건 활동과 감염 통제 조치를 적용한 끝에 사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 즉 환자를 효과적으로 격리하는 것으로 사스를 막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03년 사스가 닥쳤을 때 인류는 운이 좋았다. 왜 운이 좋았는지 데이비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스가 발생한) 중국과 싱가포르는 모두 권위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군사적 효율성이 담보된 격리 조치를 시행할 수 있었다(중국, 싱가포르는 군대를 동원해 환자, 시민을 격리하는 것으로 사스의 전염을 막았다). (…) 토론토와 홍콩 역시, (비교적) 우수한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는 풍요로운 도시들이다."

20억 명 거주 슬럼은 '질병 공장'

데이비스는 만약 사스가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자이르에서 발생했다면 그것은 21세기의 첫 전염병 대유행으로 인류를 덮쳤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바로 여기서 1918년과 2008년의 또 다른 공통점이 발견된다. 1918년 인플루엔자 전염병 대유행의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질병 공장'이라고 불릴 만한 서부전선 탓이었다.

불행히도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인류는 세계 곳곳에 '질병 공장'을 건설해왔다. 바로 제3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거대한 빈곤 지역, 이른바 '메가슬럼(megaslum)'이 그 곳이다. 데이비스가 <조류독감>이 이어서 펴낸 <슬럼, 지구를 뒤덮다>(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세계 곳곳 슬럼의 실상을 파헤친 것은 이런 사정 탓이다(☞관련 기사 : "'타워팰리스 vs 쪽방'…한국, 세계 12위 슬럼대국")

"오늘날의 인도, 멕시코의 슬럼은 결코 빅토리아 시대의 슬럼이나 1918년 서부전선의 비좁은 병영에 못지않은 질병 공장이다. 열악한 위생 환경에서 생활하는 '숙주의 밀도'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치명적인 대유행병의 필수 조건이라면, 오늘날의 메가슬럼 역시 악명 높은 빅토리아 시대의 빈민촌만큼이나 과밀하고 비위생적이다."

만약 사스가 초기에 홍콩에서 토론토(캐나다)가 아닌 다카(방글라데시), 콜카타(인도), 뭄바이(인도), 카라치(파키스탄), 더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전파되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앞으로 발생할 AI 바이러스가 이 도시의 빈곤 지역을 덮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참고로 알아두자. 오늘날 대도시의 슬럼 거주자는 무려 약 10억 명에 달한다.

이명박 당선인, 이 책을 읽어라

재앙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다지 뾰족한 방법이 없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이 한반도를 비켜가기를 바랄 수밖에……. 인구의 상당수가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인근에 밀집해 있는 남한과 인구의 상당수가 영양 부족으로 질병에 취약한 북한에 AI 전염병 대유행이 닥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한 과학 기자 로리 가렛은 이렇게 충고한다. 한반도 대운하 같은 것에 집착하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보라. 피할 수 없는 악몽을 보았다면, 심호흡을 한 번 하라. 그리고 정치인에게 이 책을 읽고 뭔가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라. 조류독감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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