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었다. 아니 아직까지는 끊었다고 생각한다.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담배를 끊었다고 하면 먼저 피식거리기부터 한다. 당신이 그럴 수 있겠어,하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20년 넘게 들여 온 습성이다. 책을 볼 때, 글을 쓸 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한바탕 일을 치르고 천정을 보고 누웠을 때, 술을 마실 때, 늘 담배가 옆에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담배를 끊지 못한 진짜 원흉은 영화때문이었다.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서, 또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더 답답해져서 극장밖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물곤 했다. 극장에서 볼 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DVD나 비디오로 영화를 보면서는 앞에 재떨이가 없으면 상영 절대불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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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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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옛날 길시사실 시절(이렇게 얘기하면 진짜 올드보이라는 게 들통난다)에는 영화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정말 그랬다. 20세기 폭스 시사실 같은 곳에는 뒤쪽 좌석에 스탠드형의 큼직막한 재떨이가 늘 구비돼 있었다. 그럴 때 영화를 보는 기자들의 모습은 마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만든 <몽상가들>의 첫장면을 연상케 한다. 파리 시네마테크의 좁은 극장에서 바닥에 앉기도 하고 누어 있기도 한 자세로 담배를 피워가며 영화를 보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거기엔 그려져 있다. 그것 참 낭만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담배 예찬론자들이라면 꼽고 싶은 장면이겠지만 그 장면이 좋은 건 꼭 담배때문이 아니다. 자유로움때문이며 일탈과 해방에 대한 거침없음때문이다.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밉지 않은 특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어린 사자들, 그렇지만 성난 사자들의 정의로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슨 또 엉뚱한 소리에다, 얼렁뚱땅 갖다 붙인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요즘의 영화계에서는 그런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판에 박은 듯, 술에 물타고 물에 술탄 듯, 새로움에 대한 경이로움에조차 이제 때가 끼었다는 듯한 무료한 표정들이 느껴진다. 왜? 다들 먹고사는 문제에 지쳤으니까. 김영하의 <퀴즈쇼>에 나오는 주인공 민수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과 좁디 좁은 고시텔의 감방 같은 생활에 지쳤으니까. 고시텔의 주인의 말마따나 '살다보면 점점 넓어 보일 거'라는 그 자포자기성 좌절의 미학에 지쳤으니까. 그러니 담배를 끊고, 건강을 생각하고, 노후 보험금이 한달에 얼마씩 나올까를 걱정하고, 비아그라를 4시간 전에 먹는 게 좋은지, 아니면 1시간 전에 먹어도 되는 것인지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 같은 '노땅'들이나 해야 할 일이다. 그건 젊은이들,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영화로 세상을 불사르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좀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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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미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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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이어서일까. 기대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만들어진다는 것조차 잘 몰랐던(영화기자 맞아?) 영화 <기다리다 미쳐>가 유독 발랄하고 유쾌하게 느껴졌다. '나라가 도와주지 않은 이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처럼 우리 젊은이들의 삶이 재미있고 신통방통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영화는 웃음과 낙관 속에서 나온다. 진정한 진보는 낙관주의에서 시작되지 비관주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젊은 영화 팬들이 한층 더 가열차게 한국영화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때다. 2008년은 한국영화로서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강우석 감독이 요즘 러브 샷 구호는 "한국영화를 사랑합시다"이다. 이상하게도 강 감독이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난다. 지금은 영화를 정말 사랑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10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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