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우리단체는 몽골 공동체 바트넥 델(튼튼한 공동체 라는 뜻)의 송년모임을 열었다.
이름하여 "책 읽는 몽골인이 되자! - 몽골노동자 독후감대회".
우리 단체에서 몽골노동자들의 한국생활 적응력 향상과 지적 수준의 유지를 위해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인데, 그 시도가 조그만 결실을 맺어 시상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단체 사무실 한쪽구석에는 '푸른하늘'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몽골어책과 영어책과 한국어책 모두 합쳐서 5백여권쯤 된다. 도서관이라는 민망한데, 그래도 몽골인들은 열심히 책을 빌려가서 읽는다.
도서관을 만든 것은, 넘쳐나는 한국어 도서의 홍수 속에서도 자국어로 된 어떤 종류의 책자든 구하기 어렵고, 그나마 자국어 책을 접하더라도 해보지 않았던 고된 노동에 시달리느라,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기 위해 죽기살기로 바둥대느라 읽고 쓰고 생각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렇긴 하지만 책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될 것인지 짐작이 잘 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도서관을 만들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들 책을 빌려가곤 했다. 그것을 보니 좀더 광범위하게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참 좋겠다 싶어서 독후감대회라는, 이주노동자 상담단체로서는 생뚱맞은 일을 한번 벌여본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행사이다.
먼저 책을 선정하여야 했는데, 선정된 책은 '후느(사람)'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처이넘이라는 유명한 몽골작가가 쓴 소설이었다. 이 작가는 산문을 마치 시처럼 서술하는 특징이 있다는데 정말 그랬다. 책을 사와서 펼쳐보니 마치 아주 길디긴 장시(長詩)를 보는 것 같았다. 후느는 평범한 몽골여성이 온갖 역경을 맞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나가고,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룬다는 내용이라는데, 이 책을 추천한 이들은 아마도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선정하고 독후감대회 공고를 내고 두달 가량의 기간을 줬다. 그리고 몽골공동체의 운영진과 상의하여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몽골인 중에서 제출한 독후감을 심사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몽골에서 러시아어과 교수-과학교사-시인이었던 이주노동자들 5명이 심사위원들로 뽑혔다. 이들이 응모한 독후감들 중에서 1등,2등,3등을 뽑았다. 상품은 독후감대회스럽게 문화상품권으로 정했다.
행사날, 1등한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기가 딸린 부부가 들어왔다. 그 부부는 1년쯤 전에 부인은 일부 덜 지급된 임금을 달라고 말했다가 술에 취한 사업주에게 폭행당하고, 그에 항의하다가 부인과 남편이 함께 해고당하여 우리 단체를 찾아왔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안은 잘못 계산된 임금과 해고수당까지 받고서 회사를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된 사안이었다.
이번에 독후감대회에 응모한 사람은 남편이었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이름을 줄여서 부르다보니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도 약칭이었는데, 독후감원고에는 본명을 썼으니 우리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단체 입장에서야 누가 1등을 하건 중요하진 않는데, 그래도 아는 사람이, 그것도 폭행당한 부인을 보호하려다 해고당한 사람이니 더 반가왔다.
가끔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100이면 100, 고개를 흔든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고, 잠시 시간이 나면 쉬어야 하고, 어렵사리 마음먹어 책을 잡아도 글씨를 보면 어지럽고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온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책을 잡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서 지원단체들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하나씩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돈도, 사람도 없어 초라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책이 쌓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시아나항공의 지원으로 230여권의 다국어 책과 책구입대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런 지원들로 책이 웬만큼 갖춰지면 2008년에 시행할 제2회 독후감대회는 1회보다 훨씬 풍성하게 치러지지 않겠는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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