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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해체론, 이명박 정부의 책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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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교육부 해체론, 이명박 정부의 책임 회피"

[인터뷰]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전화벨이 연신 울렸다. 하지만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교육부에서 온 전화네요. '교육부를 없앤다는데 왜 전교조가 가만있느냐, 교육부가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전교조가 반대 성명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합디다."

전화를 끊은 뒤, 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통화 내용을 짧게 소개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고위 관료가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프레시안> 기자들이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전교조를 찾았던 지난해 12월 28일 오후의 일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사실상 한 해의 마지막 근무를 하고 있던 이날, 교육부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가 교육부의 기능과 권한을 상당부분 지역 교육청에 넘길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교육부 해체론'도 나왔다. 교육부가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교육부 관료들의 사정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는 교육부의 존폐에 관심이 없다. 설령 교육부가 아예 통째로 사라져도, 국가가 담당해야 할 공교육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다. 반대로 현재의 교육부가 그대로 존속해도, 공교육의 틀이 바뀐다면 국민들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요컨대 정부 조직 개편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다. 공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그에 걸맞은 조직 형태가 어떤 것인지를 논의하는 게 바른 순서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반대다. 이명박 정부가 공교육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논의 없이 교육부 해체론이 먼저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 해채 vs '교육복지부'로의 전환

이날 전교조를 찾은 것도 그래서였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전교조를 포함한 교육시민단체들은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이 단체는 대선 과정에서 몇 가지 공약 요구안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현행 교육부에 대한 개편이었다.

복마전처럼 얽혀 있는 현행 교육 행정 조직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은 이명박 당선자 측과 닮았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향은 다르다.

이들은 현재의 교육인적자원부를 없애는 대신 교육복지부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인적자원 관련 업무는 노동부로 이관하고,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관련 업무는 (가칭)고등교육위원회를 구성해 별도로 담당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교육복지부는 유·초·중등 교육 관련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지역마다 위치한 교육청에 대해서는 교육복지센터로 재편해서 공교육을 감독하는 기능 대신 공교육을 지원하는 기능을 담당하도록 할 것을 주장했다.

현행 교육인적자원부 체제가 사람을 경제적 목적을 위해 소모되는 '인적자원'으로 여기는 발상에 바탕을 뒀다는 인식에 따른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적자원'이라는 표현이 있던 자리에 '복지'를 넣었다.

공교육은 사람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루 소중히 여기는 생각에 바탕을 둬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약자를 배려하는 복지의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날로 심화돼 가는 교육 양극화가 이런 판단의 배경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이런 주장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치열한 토론 속에서 검증되고 다듬어지는 과정도 거치지 못했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 포기하려나"

그런데 대선이 끝난 지금, 당선자 측에서 현행 교육부 조직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록 순서가 바뀌었지만, 새로운 정부가 추구할 공교육의 방향에 대한 토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토론이 생략될 경우, 타성에 젖은 관료가 빠져 나간 자리에 들어설 것은 그저 혼란뿐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교육부 개편의 필요성을 먼저 제기한 집단 가운데 하나인 전교조를 찾았다. 물론 전교조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이미 다양한 비판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공교육을 정상적으로 운용하려면 싫건 좋건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다른 교육 현안에 대한 생각까지 물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우선 '교육부 해체론'에 대해 정 위원장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육에 대해 국가는 책무성이 있다. 중앙 행정 기관의 역할을 지역 교육청에 떠넘기는 것은 이런 책무성을 포기하는 셈이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어 그는 이 당선자 측의 입장과 달리, 지역 교육청의 규모와 권한을 축소하여 교육복지센터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공교육을 지원하면서 학교가 감당하기 힘든 복지 부문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

또 최근 불거진 수능 오답 사태를 언급하며, 대학별 본고사가 도입될 경우 이런 혼란은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올해 쟁점이 됐던 김포외고 입시 부정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당선자 측이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을 보며 여러 교훈을 얻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특목고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생길 수 있는 폐해,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한 사립학교 재단의 병폐, 사교육 기관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면서 생겨난 부작용 등이 그 내용이다.

이런 지적을 하며 그는 이처럼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특목고가 굳이 있어야 할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교육운동 진영의 주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물론 이런 입장은 이 당선자 측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교육 양극화' 낳을 공약에 교사들은 입 다물고 구경만 하라는 선거법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곧 들어선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경제나 외교안보 등의 영역에서는 결정적인 변화는 없으리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반면 교육 부문은 큰 변화를 겪으리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명박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공약했던 방향대로 새 정부가 교육정책을 운용한다면 전교조와 마찰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는 전교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선 결과를 지켜본 소감이 궁금하다.

정진화 :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고 과정에서는 답답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교육 문제에 대한 입장이 후보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중요한 쟁점인데, 이에 대해 전교조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특정 후보의 공약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비판 의견을 내려고 하면 법이 가로막았다. 반대로 특정 후보의 공약에 대해 지지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은 철저히 봉쇄돼 있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규제한 법과, 정치적 의사 표현을 엄격히 규제한 선거법 때문이다.

이처럼 정책에 대한 판단을 발표하기 힘든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고, 그 결과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었다. 그리고 진보 개혁 진영은 참패를 했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진보 개혁 진영이 스스로 반성하고, 거듭나야 할 때다.

"'20% 귀족학교' 위해 80%는 들러리 서나"

프레시안 :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던 공약이 교육정책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자는 대입 자율화, 자사고 증설 등 전교조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공약을 내세웠다.

정진화 : 이미 교육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는 양극화를 해소하기는 커녕, 더 확대할 정책을 내세웠다.

당선자의 공약에 포함된 공립형 기숙학교,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등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학교는 지금도 있다. 전체 고등학교의 6% 가량이 이런 유형이다. 그리고 이런 학교들은 이미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자사고의 경우, 일년 학비가 천만 원을 넘는다. 그래서 '귀족학교'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학교를 대폭 증설하면, 교육 양극화가 더 심해지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자사고, 공립형 기숙학교, 특수목적 고교 등을 당선자가 주장한 규모대로 늘리면, 전체 고등학교의 20% 가량이 이런 유형에 속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나머지 80%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지금보다 심한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귀족학교'에 교육정책의 초점이 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책 방향은 전교조가 이제껏 주장해 온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전교조의 주장과 다르므로 반대하는다는 게 아니다. 일차적인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이다. 그래서 반대한다. 지금도 반교육적인 입시경쟁이 더 어린 나이에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쟁 속에서 사교육이 더 확대될 경우, 학부모들이 이차적인 피해자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포외고 사건…특목고, 학원, 사립학교 문제의 종합판"

▲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대선 기간 동안 김포외고 사건이 터졌다. 대중은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대선 후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정진화 : 김포외고 입시 문제가 유출된 날이 2007년 10월 25일이다. 그런데 이날은 외국어 고교 등 특목고가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을 더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교육부 보고서가 나온 날이기도 하다. 특목고 정책의 총체적 파탄을 보여준 날로 기록될 것 같다.

특히 외국어 고교의 경우, 어학 영재 육성이라는 설립 취지와 동떨어진 채로 운영돼 왔다. 교육부 보고서가 인정한 내용이다. 외고 졸업생들이 선택하는 전공 분야를 보면, 일반계 고교와 거의 차이가 없다. 그저 유명 대학 진학률이 높은 입시 명문고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반계 고교로 전환하는 게 옳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의 존재 근거가 희박하다는 교육부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특목고 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을 차기 정권으로 미뤘다. 무책임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외고 진학 열기가 뜨거워지자, 학원 등 사교육 업체가 끼어 들었다. 사교육 업체는 시장 확대를 위해 외고 진학 열기를 부추기는 것을 넘어 아예 문제지를 거래하며 외고와 결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포외고 사건은 이런 상황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학원끼리 문제지를 사고 파는 일, 출제경향을 미리 입수하기 위한 경쟁 등은 이미 있었다. 그런데 외고는 과학고와 달리 사립학교다. 그래서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립학교 재단의 고질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김포외고 사건은 특목고 일반의 문제, 학교와 결탁하는 수준에 이른 사교육 업체의 문제, 인사 등 학교 운영의 투명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학 재단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문제는 모두 이 당선자가 추구하는 시장화 교육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이 당선자가 선거 기간 동안 불거진 김포외고 사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국가 통제 시험에서도 오답이 나오는데…대학별 고사에선?

프레시안 : 이 당선자 측은 3단계 대입 자율화 방침을 발표했다. 1단계는 대학이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학생부 반영비율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중3 학생들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 학생부 반영 비율은 첨예한 논란을 빚어 왔다. 정부는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했고, 대학들은 이에 맞섰다.

정진화 : 대학은 왜 학생 선발 방식에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유명 대학들은 입시 정책에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우수 학생을 독점했다. 하지만 이런 대학들이 내놓은 결과는 어떤가. 초라하기 그지 없다. 대학들은 '어떤 학생을 뽑을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뽑은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지'의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학생 선발 방식에 대한 논란에 갇혀 있느라 대학 개혁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학 교육의 질은 학생 선발 방식과 관계 없다. 대학 교육에서 발생한 문제가 입시 제도 탓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학들은 흔히 '자율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학문 연구가 아니라 학생 선발에만 국한된 자율성이다. 그리고 이는 '자율적 권리'라기보다는 '독점적 권리'에 더 가깝다. 입시 정책이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대학 측의 요구는 사실상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교육 과정 전체에 대해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최근 수능 물리 문제가 논란이 됐다. 국가가 통제하는 시험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대학별 본고사가 허용된다면 이런 사태는 더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대학별 본고사가 실시될 당시에도 그랬다. 다만 수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응시자의 수가 적다보니, 큰 논란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학생부 중심의 선발방식이 대입 제도로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학생의 다양한 측면을 교사가 관찰해서 학생생활부(학생부)에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토대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게끔 하자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경험해 보면 안다. 내신 성적이 40% 반영될 때와 20% 반영될 때를 비교해 보면,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물론 학생부에는 중간, 기말 고사 결과와 내신 성적만이 아니라 봉사 활동 경험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할 부분은 학생부 반영 비율이나 본고사 실시 여부가 아니라 고교 졸업까지의 학생부 기록에서 어느 지점에 주목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지원자의 학생부 기록을 놓고 선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물론 학생부 기록에서 어느 요소를 중시하는지는 대학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가 가르칠 학생, 우리 마음대로 뽑겠다'는 대학은 무책임하다"

프레시안 : 교육운동 진영은 오래 전부터 학생부 중심의 대입제도를 도입하도록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보수 언론의 경우, 학생부에 담긴 내신 성적의 신뢰도를 주로 문제삼았다. 또 수능 시험은 단 한 차례로 끝나고, 시험을 망쳐도 재수를 통해 만회 가능하지만 내신 성적은 그렇지 않아서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이 더 크다는 비판도 있다.

정진화 : 우선 수행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보기 몇 개 놓고 답을 고르는 방식보다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참여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이 과정에서 평가가 이뤄지는 게 옳다. 그리고 이런 평가의 질과 수준이 높아지려면 교사의 수업 시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줄이는 등의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생부 중심 선발 방식에 대한 비판은 '학생들에 대한 평가 방식은 오직 시험뿐'이라는 오해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 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학생을을 서열화하는 시험은 여러 평가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매일 이뤄지는 교육활동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모습과 결과를 교사가 잘 기록하는 형태의 평가도 있다.

이런 다양한 평가 결과가 신뢰받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시험 점수만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평가 기록이 학생 선발 과정에서 존중받는다면, 학생부 중심의 대입제도에 대한 비판은 불식될 것이다.

또 수능이 한 차례로 끝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덜 부담스럽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서 시험 당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자신이 살아온 모습으로 평가받는 게 부담이 더 적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수능 점수가 입시에서 지나치게 중시될 경우, 학교 교육이 수능 준비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해당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에 충실하기보다 수능 문제 유형을 더 의식하는 수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당선자 측과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 대학이 학생 선발권의 자율성을 갖게 될 경우,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은 굳이 반박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당선자 측이 발표한 3단계 대입 자율화 방침을 통해 대학별 본고사가 허용된다고 가정해보자. 수험생 입장에서 특정 대학의 선발 방식에만 맞춰 준비할 수는 없다. 적어도 세 개의 학교 정도는 지원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시험 세 가지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대학의 선발 방식은 해마다 바뀔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학생이 느끼는 불안감이 지금보다 커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학입시가 초중등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 대학들이 '우리가 가르칠 학생을 우리 마음대로 뽑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태도로 나오는 것은 교육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본다.

"'학벌 획득 수단'으로서의 교육, 빨리 벗어나야"

프레시안 : 학생부 중심 대입제도에 대한 호응이 적은 배경에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이 있는 듯하다.

정진화 : 그렇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교육 문제 가운데 어떤 것들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 혹은 지역 사회의 문제가 풀려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안 되니까, 학교가 과도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빚어진 폐해에 대한 불만이 향할 곳을 못 찾으니 학교로 쏟아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학교의 교육 여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결국 공교육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평가마저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교사가 학생에 대해 기록한 학생부가 신뢰받을 수 있다.

이처럼 학교 밖 사회에서 먼저 공론화돼야 할 문제 가운데 대표적인 게 학벌 문제다. 출신 대학이 사람의 인생에서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학벌 기득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교육은 그 자체로 목적일 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교육이 수단으로 여겨지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성적에 그토록 뜨거운 관심을 갖는 어른들의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너무 이른 나이에 경쟁에 내몰려 활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라. '수단으로서의 공부'에 지쳐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지 않은가.

프레시안 : 교육이 아이들의 행복한 삶이 아닌 학벌 기득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학벌 기득권을 얻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이뤄진 교육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을 막기 힘들다. 그리고 이처럼 결과가 수단까지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은 교육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팽배해 있다.

이명박 당선자도 매사에 결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실적을 중시하는 논리가 교육정책에 반영될 경우, 교원정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진화 : 당선자는 주로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기업은 매출이 분명하고, 경영의 결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게 쉽다. 그리고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결과를 놓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문화가 통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 문화를 교육 부문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이미 학교에는 전부터 이런 평가 방식이 적용돼 왔다. 이를 테면 교원에 대한 평가의 경우, 최근 논란이 된 교원 평가 외에도 근무평정 제도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또 교원에 대해 등급을 매긴 뒤, 각기 다른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차등성과급 제도 역시 일종의 평가 제도다. 삼중의 평가가 이뤄지는 셈이다. 요컨대 평가의 부족이 아니라 평가의 과잉이다. 이런 상황을 고치지 않고, 새로운 평가 방식을 무턱대고 들여오는 것은 잘못이다.

▲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프레시안

"학교 민주화로 학생, 학부모와 신뢰 쌓겠다"


프레시안 : 교원평가가 논란이 될 당시, 국민들이 전교조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당시 어떤 이들은 "전교조가 교원평가 반대에 기울인 노력만큼 학생인권 문제에도 힘을 쏟았더라면"하며 아쉬워했다. 이런 태도의 옳고그름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다만 전교조가 학생, 학부모 등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 과제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정진화 : 교원평가는 단지 교사를 통제한다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교육활동에 대해 학교 관리자가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교사들이 실제 교육활동보다 문서를 잘 꾸미는 일에 더 치중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교사들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교원평가가 교사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과 관계가 있는 문제다.

차등성과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을 경쟁시켜 교육 공동체를 파괴하는 문제 때문에 반대에 나섰던 것인데, 교사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 공동체가 파괴될 경우, 피해는 아이들이 입는다. 교원정책도 교육정책의 일부이고, 교육정책은 결국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교원단체만이 아니라 청소년단체, 학부모단체와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연대를 위해 전교조는 노력해 왔다. 어느 기자가 '올해 전교조가 조용했다'라고 이야기 했다. 전교조만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애써 왔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문제, 업체의 가격담합에 맞서기 위한 교복 공동구매, 대입 제도 개선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활동해 왔다.

물론 단체끼리의 연대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학생, 학부모 등과 협력하는 체제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체제를 만드는 게 전교조가 주장하는 학교 개혁의 핵심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요구 사항이 교장선출보직제다.

교장을 학교 구성원들이 선출하는 제도다. 또 교장이라는 게 하나의 보직, 즉 역할에 불과한 것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선출된 교장은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가 된다. 이런 제도를 통해 학교는 지금보다 민주화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교사들은 학생, 학부모와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 역시 학교 운영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학생인권에 관한 문제제기처럼 학생, 학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활동과제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학교 민주화의 과정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관료주의 표본인 시도 교육청을 오히려 강화한다?

프레시안 : 학생, 교사, 학부모의 폭넓은 참여가 보장되는 학교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학교 역시 국가가 운영하는 공교육 체계의 일부다. 그렇다면 학교 민주화를 위해서라도 국가의 교육행정체계에 대한 관심을 거둘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체계의 정점에 있는 교육부의 권한을 대폭 줄이겠다는 이야기가 이 당선자 측에서 흘러나온다. 대신 16개 시도 교육청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교육부 해체'라는 표현을 써서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정진화 : 대선 기간 동안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정한 입장이 현재의 교육인적자원부를 교육복지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적자원 개발'이 아닌 '복지'의 관점으로 교육에 접근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만 공교육이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교육복지란 모든 아이들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도 교육청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교육부가 공문을 보내면, 시도 교육청이 내용을 조금 덧붙여서 일선 학교로 보낸다. 그리고 일선 학교가 보낸 답장을 다시 교육부에 전달한다. 요컨대 시도 교육청은 공문의 전달벨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시와 도보다 하위 행정 단위의 교육청은 아예 없애는 게 옳다. 그리고 시도 교육청은 교육복지센터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과 같은 시도 교육청 체계에서는 중간에 있는 관료들이 불필요한 일만 만들어 온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낭비적인 기구에 가까웠다. 이런 행정 낭비를 없애고, 해당 지역에 있는 학교와 아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끔 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서비스 센터 개념이다.

그런데 현재의 시도 교육청을 오히려 강화하자는 주장이 당선자 측에서 나오고 있다. 잘못된 방향이다. 교육부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건, 국가가 짊어져야 할 공교육의 책무성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중앙 교육 부처의 조정 역할이 없으면, 지역 및 계층에 따른 교육 불균형이 해소되기 어렵다. 현행 교육인적자원부가 됐건, 교육복지부가 됐건, 모든 국민이 평등한 교육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마땅히 해야 한다.

격화될 지역간 학력 경쟁…재정 자립도 낮은 지역은 뒤쳐질 수도

그런데 교육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지역 교육청 즉 현재의 16개 시도 교육청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가 한발 물러서는 대신 시도 교육청 간의 경쟁을 부추기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지역 교육감들이 학력 경쟁의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다. 학부모들을 자극해서 입시 교육을 강화하고, 입시 명문고 설립 경쟁을 벌일 것이다. 입시 성과가 좋은 학교를 골라 재정 지원을 집중하는 결과도 예상된다. 지역 간, 학교 간 교육 불균형이 더 심화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눈 여겨 볼 대목이 교육 재정이다. 노무현 정부는 교육재정이 GDP 대비 6%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4.3% 수준이고 그나마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시도 교육청을 강화하겠다는 이 당선자 측의 입장이 해당 지역이 알아서 교육재정을 확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재정 측면에서까지 중앙 정부의 책무성을 포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육재정 자립도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이를테면 자립도가 낮은 전북과 자립도가 높은 서울의 격차는 상당히 크다. 그런데 이 당선자 측에서 흘러 나온 방침대로라면, 이런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농어촌 지역의 교육 여건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감동 없는 진보? 들판의 헐벗은 나무에게서 배우겠다"

프레시안 : 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면서 드러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들린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시장 원리를 강조한 기업가 출신 후보는 높은 지지를 받은 반면, 진보 개혁 진영은 지리멸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의 시장화가 낳을 부작용에 대해 공감한다 해도, 그것을 막을 힘은 매우 약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이들은 '진보 개혁 진영이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진보 개혁 진영이 비록 실력은 부족해도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실력도 없고 감동도 못 준다는 이야기다. 진보 개혁 진영이 대중에게 감동을 준 사례로 빠지지 않고 꼽히는 게 1989년 전교조 창립이다. 과거 전교조 교사들에게 감동을 받았던 이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진화 : 국민들이 빠르게 진행될 교육의 시장화, 입시경쟁 강화 등의 국면을 거치며 다양한 부작용을 겪게 되리라고 본다. 이럴 때일수록 시야를 넓혀서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외국 사례라고 하면 미국, 일본, 영국의 경우만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경제 지표는 높다도 교육 선진국은 아니다. 특히 영국은 지나친 시장화로 공교육을 망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면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기록한 핀란드 모델이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본다.

진보 개혁 진영이 무기력하고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은 옳다. 전교조 역시 보다 많은 학생, 학부모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전교조만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많았던 것이 한 원인이라고 본다. 2008년에는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다양한 이들과의 소통 및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참 안타까울 때가 있다. 교육 문제가 왜 전교조만의 문제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립학교 재단이 비리를 저지르면, 결국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는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전교조가 이야기하는 교육 문제의 대부분이 사실 국민 모두의 문제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이런 문제에 소극적일까. 프레임(구도) 싸움에서 보수 진영이 이겼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상 일부 유명 대학들이 교육에 대해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인데, '대학의 자율성'이라고 표현하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수 진영은 이렇게 유리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장악하는데 능하다. 반면 진보 진영은 참신한 프레임을 설정하는데 익숙치 않다.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자기 반성이다. 나부터 반성하겠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하겠다.

거친 들판의 헐벗은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때다. 무성한 잎사귀로 스스로를 감추려 해서는 실패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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