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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주도 미스신>이 보여주는 소박한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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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주도 미스신>이 보여주는 소박한 낭만주의

[뷰포인트] 바람둥이 여성을 통해 드러나는 뜻밖의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망

싸이더스의 첫 배급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용의주도 미스신>은,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가능성을 보여준 한예슬을 전면에 내세운 코미디다. 느끼하지만 돈 많고 자선사업에 힘쓰는 재벌 3세 준서(권오중)와 촌스럽지만 일편단심의 순정파이자 권력 중앙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고시생 윤철(김인권), 그리고 나이가 어려 철이 없지만 당장 육체적 매력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랩퍼 현준(손호영)과 한꺼번에 다각연애를 펼치는데, 아마도 이렇게 다각연애를 펼치면서도 밉지 않을 여배우는 현재로선 한예슬이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기대에 걸맞게 한예슬은 '용의주도하게' 다각연애를 펼치는 신미수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십분 살려 각 남자들에게 다른 전략으로 공략하는 그녀의 연애기술을 유쾌하게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다각연애를 펼치면서도 밉지 않은 신미수의 캐릭터는, 단순히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개인적인 매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신미수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들, 혹은 그런 여주인공들의 연적으로 등장하는 바람둥이 여성이나 일군의 '얄미운' 여성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렇게 뛰어난 외모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누구에게도 완벽히 맞출 수 있는 상황 대처력을 가진 데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는 시대에 자기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며 직장에서 '보배' 취급을 받을 정도의 여성이면서도, 신미수는 남자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 다른 평범한 여성들은 엄두도 내보지 못할 강도의 성의와 노력을 보여준다. 재벌3세인 준서에게서는 각종 비싼 선물들을 받아 챙기지만 어리고 경제능력 없는 현준에겐 데이트 비용은 물론 현준 친구들의 유흥비까지도 책임을 지고, 산 위의 절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시생 윤철에게는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다시피 하면서 음식을 싸 나르고 고기를 구워 먹이며, 심지어 이를 스님에게 들키자 용서를 빌기 위해 삼천 배를 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준서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녀가 성당에서 하는 봉사활동은 그저 남자에게 눈에 띄기 위한 행동치고는 꾸준한 성의와 부지런함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 여성은 자신의 일 분야에 있어서 비록 준서의 인맥을 동원하기는 하지만 당당히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승부를 걸어 일을 성공시킨다.
용의주도 미스신
여기에서 이 영화의 아이러니, 특히 신미수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그녀는 비록 '사랑은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것'이라며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은 척 남자들을 재며 계산하고 있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며, 그 사랑이 경제적 동기나 다른 세속적 동기로 인해 깨지지 않는 순전하고 고결한 사랑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그런 그녀가 위악적으로 다각연애를 추구하는 것은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소심한 바람 때문이다.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용의주도'한 그녀가 보여주는 그 열의와 성의다. 신미수는 자신과 악연으로 계속 엮이는 동민(이종혁)에게만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동민에게 본격적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은 그가 보기 드문 낭만주의자라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랑'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동민의 부모를 통해 확인했을 때이다.그토록 '용의주도'하게 연애전략을 짜던 그녀가 별로 용의주도하지 않게 무수한 연애들의 파경을 맞는 것 역시 그녀의 사랑에 대한 저 순진한 욕망 때문인 것이다. 낭만주의적 사랑에 대한 신미수의 의구심은 곧 이 영화가 현대의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의구심이기도 하다. 낭만주의적 사랑은 그 발명 자체도 근대에 이르러서였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가부장적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게 페미니즘 일각의 시선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이 아니라도 현대의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옛 동화식의 낭만주의적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없다. 신미수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곤 해도 그녀의 가족환경이나 성장배경, 혹은 과거에 있어 사랑에 대해 절대적 불신과 적의를 갖게 된 무슨 대단하고 극적인 계기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고만고만한 상처와 과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낭만과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을 보는 오늘날의 모든 여성들과 남성들의 사랑을, 신미수의 약간은 과장된 좌충우돌을 통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전형적인 싸이더스표의 세련된 코미디다. 영화의 엔딩이 결국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관습대로 미수와 동민의 결합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미수의 여행과 동민의 기다림으로 맺는 것 역시 그러한 '타협'의 결과물이며, 남자들의 환상 속에나 존재할 것만 같은 신미수라는 캐릭터가 의외의 현실성과 공감을 얻어내는 것도, 결국 현대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소박하고 솔직한 접근 덕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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