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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돈, '돈 사회'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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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돈, '돈 사회'가 도래했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18> 윤리를 우롱하는 '돈 사회'

돈 돈 돈

돈의 돈 돈

악마의 금전

바야흐로 우리는 돈이 지배하는 '돈 사회'에서 살게 된 것 같다. '돈 사회'는 단지 돈이 지배하는 사회만을 뜻하지 않는다. '돈'이라는 말은 '미쳤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돈 사회'란 '미친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돈은 단지 돌고 도는 것이어서 돈이 아니라 사람들을 미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돈이다. 그러니 돈이 지배하는 사회는 미친 사회이다.

사실 돈은 세상살이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 발명품이다. 아마도 언제 어디서 돈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무의미할 것 같다. 농경생활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거래를 하게 되면서 돈이라는 교환수단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돈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물건과 물건을 직접 교환해야 했기에 아주 불편했다. 쌀이 필요하면 돼지를 끌고 나가야 했고, 돼지가 필요하면 쌀을 지고 나가야 했으니까.

돈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공적을 생각하면, 돈을 일방적으로 욕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일 것이다. 돈은 실로 문명의 발달을 이끈 견인차라고 할 수도 있다. 문명은 단지 불과 수레로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돈이라는 편리한 교환수단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니 문명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발명해야 했으리라. 그러므로 무턱대고 돈을 욕하는 것은 문명을 욕하는 것이자 우리 자신을 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사의 큰 문제는 수단과 목적이 흔히 뒤바뀐다는 것이다. 영적 구원의 수단인 교회와 사찰이 영혼을 억압하고, 시민의 계약으로 성립한 국가가 시민 위에 군림하고, 그리고 편리한 교환수단으로 만들어진 돈이 사람들을 속박하고 심지어 미치게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온갖 영화를 누리며 편리한 삶을 살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한다. '돈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은 근원적인 위협을 받는다. '인권'의 탈을 쓴 '돈권'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돈 사회'이기 때문이다.

'돈 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했지만 사실 돈은 지배도 복종도 하지 않는다. 사물이 무슨 지배를 하는가? 돈이 지배한다는 것은 사실 돈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돈이 지배한다는 것의 실체는 "돈이 많은 사람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지배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적 인권과 연관된 심각한 사회현상이자 사회문제이다. 설령 우리가 그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지배는 언제나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 윤리적 정당성은 그 기초 중의 기초이다. 그러나 '돈 사회'에서는 돈이 윤리를 조롱하고 추방한다.

'돈 사회'는 '돈 질서'를 추구한다. 그것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보다 반윤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윤리란 딱딱하거나 우스운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기초질서를 뜻한다. 윤리가 존중되지 않는 곳에서 신뢰의 기반이 굳게 다져지기는 불가능하다. 윤리의 화석화도 큰 문제이지만 윤리의 증발은 더욱 더 큰 문제이다. 윤리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가족과 연줄에만 기대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처절한 '난민사회'가 되고 만다. 윤리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돈 사회'는 참담한 '난민사회'이다.

'돈 사회'를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번 자들이다. 그들은 윤리를 존중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윤리를 깔아뭉갠다. 개발과 투기와 부패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재테크 방법이다. 그들은 직접 강도나 살인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범죄의 발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고급 의복을 입고 우아하게 웃으며 사업을 한다. 쉽게 알기 어려운 복잡한 낱말들로 이루어진 그들의 말을 해석해 보면, 결국 개발과 투기와 부패로 한몫 챙기자는 뜻이기 일쑤이다.

'돈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번 자들이 법의 심판도, 윤리적 제재도 받지 않고 경제권력을 전횡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놀랍게도 '돈 사회'는 민주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주권자인 시민들 중의 다수가 '돈 사회'를 선택한다면, '돈 사회'는 민주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그러나 '돈 사회'는 근원적인 불신과 불안 위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돈 사회'는 언제나 안정될 수 없으며,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미친 사회'가 오죽하겠는가?

외신은 이번 대선을 두고 '윤리가 아니라 경제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평가는 반만 맞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 경제는 지금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건만 대체 무슨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가?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경제를 살리겠다니, 그것은 일단 경제를 죽여야 가능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팔팔한 경제가 바야흐로 타살될 판이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양극화에 있다. '고성장 속의 양극화'야말로 한국 경제의 진정한 특징이자 문제이다. 이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이른바 '민생문제'이다. 그런데 민생은 영어로 다름 아닌 WELFARE, 즉 '복지'를 뜻한다. 요컨대 민생문제의 해결은 복지의 증진을 뜻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도 박정희식 성장주의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정부의 갈지자 행보는 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면서 '돈 사회'의 완성을 촉진했다.

개혁의 유실을 배경으로 지역, 세대, 계층을 떠나서 다수의 사람들이 법은 물론이고 윤리조차 접어둔 채 오직 돈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돈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을 버는 과정과 쓰는 내용이 지극히 중요하다. 윤리를 우롱하는 '돈 사회'는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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