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원래 닭살 돋는 짓거리다. 그런데 이게 참 모순적이다. 스스로에게 객관적이기 힘든 사람의 특성상, 자기 자신의 닭살 행각은 참아도, 다른 이의 닭살 행각을 보면 당장 대패를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멜로 영화에서의 닭살 행각은 그래서 가끔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오늘 시사회를 통해 본 <내 사랑>이 그랬다. 이 영화에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아니, 직업이 다른 거 말고는 남성 캐릭터들의 변별력이 크지 않으니 차라리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고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괴상한 여자, 귀여운 여자, 그리고 지고지순한 여자.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 별 해괴한 짓을 다하고 다니는, 괴상한 여자는 최강희이고, 짝사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이쁜 표정은 다 마스터한 듯한, 귀여운 여자는 이연희다. 그리고 남자가 싫다는데도 끝끝내 들이대는, 지고지순한 여자는 임정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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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
세 말라깽이 여배우들에겐 그리 소화하기 힘든 배역은 아니었을 것 같다. 최강희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 같고, 이연희는 머리 스타일만 바뀌었지 캐릭터 컨셉트는 〈M>의 미미와 흡사하다. 임정은도 <사랑하니까 괜찮아>로 '지고지순'의 개념을 미리 예습한 바 있다. 이한 감독도 마찬가지. 꽤 흥행한 연출 데뷔작 <연애소설>의 팬시용품적 '필'을 그대로 가져온데다, 손예진이 '내가 찾는 아이'를 부르는 장면을 술 취한 이연희가 '하와이안 커플'을 부르는 장면으로 살짝 대체하는 센스! 이렇게 세 여자를 중심에 둔 세 커플의 에피소드에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을 엄태웅의 에피소드가 덤으로 얹힌 이 영화는, 워킹타이틀의 유쾌한 멜로 <러브 액츄얼리>나 지난해 흥행에 꽤 성공한 한국영화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이른바 '떼거리 멜로'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굳이 그런 방식을 택했다면,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이 영화는 과감히 폐기처분한다. 그냥 저 에피소드가 지겨울 쯤 이 에피소드가 나오고, 이 에피소드에 하품이 터질 쯤 저 에피소드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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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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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매력에 한껏 기대는 것 말고는 별반 독창적 드라마나 대사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 심심하기 그지 없는 연애담의 나열이 지겹기만 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서두에 썼듯이 대사 한줄한줄 닭살이다. 그 이유를 꼼꼼하게 살폈더니 주인공들, 너나 할 것 없이 속에 있는 말들을 어찌 그리 줄줄 잘도 읊어대는지 모르겠다. 대사란 인물이 가진 심리의 반영임과 동시에 관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영화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이상, 인물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정직하게 말로 옮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헤어지기 직전의 한 여자가 등을 돌린 남자에게 "너 정말 그렇게 가버린다면 다시 올 생각은 하지마"라고 했다면, 이 말은 '제발 가지마, 내 사랑'이라는 뜻이다. 우리 민요 아리랑이 괜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투정이었겠나. 그런데, 이 영화는 안그런다. 모두들 너무 착하고, 너무 솔직하다. 세상도 뽀사시하다. 그래서 닭살이다. 미리 본 영화기자는 별점 대신 다음과 같은 권고를 드린다. 극장 문 들어서기 전에 대패 하나씩 준비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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