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여승무원, 이랜드 비정규직, 코스콤 비정규직….
민주노총의 80만 조합원 가운데서조차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외로운 싸움을, 그것도 오랫동안 벌이고 있는 이들이지요.
위원장이 되고 보니 이들보다 더한 사람도 많더군요. 석달 동안 '현장대장정'을 벌이면서 조합원들을 만나는 와중에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아무도 우리 싸움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호소를 맞닥뜨렸을 때였습니다.
비록 못 배운 머리지만 그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나 비상식적인 회사 측의 태도. 그 앞에 한없이 절박한 자신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때, 조합원들은 절망하곤 한다고 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밝혀진 삼성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미약한 목소리가 그 넓은 신문 지면 어디에도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사자들에겐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몸뚱이를 불 속에 던질 정도로 한 맺힌 일이어도, 스스로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해도, 400m 상공에서 20일이 넘도록 농성을 해도 세상 어디에도 그 몸짓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선뜻 '프레시앙'이 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 조합원들을 벼랑 끝 절망에서 지켜내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 쉽게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로 전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만 더 이상 우리 조합원들이 울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은 그 동안 그런 존재였습니다. 처음에는 젊고 화사한 여성들이 투쟁 머리띠를 묶었다며 KTX여승무원들의 파업에 관심을 가져 주던 세상이 파업 두 달, 세 달, 1년을 넘기면서 시들해질 때도 <프레시안>은 어떤 언론보다 성실히 어린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아 냈습니다. 철도공사가 <프레시안>과 담당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를 잘 보여줍니다.
비정규직법 시행 전날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할 때도, 그들이 농성 20여 일 만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끌려나올 때도 <프레시안>은 그들의 눈물을 세상에 알려주었습니다.
<프레시안>이 없었더라면, 우리 조합원들은 또 한 번 울어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프레시안>이 어렵다고 합니다. 아마 그 <프레시안>이었기 때문에 더 어려워진 것이리라 혼자 생각해봅니다.
모든 것이 양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언론의 양극화는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언론도 80:20, 아니 90:10의 구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80, 아니 90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려주는 언론을 80, 아니 90이 직접 살려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보람찬 일일 겁니다. 그것이 또한 저를 위원장으로 믿고 있는 80만 조합원들을 위한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더욱이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정작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은 외면당하고 소외되는 배반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진보라는 실날같은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기꺼이 '프레시앙'이 되겠습니다.
저 개인이 '프레시앙'이 되는 것 뿐 아니라 민주노총도 진실 보도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언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동안 <프레시안>의 한 사람의 독자로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존경, 연대를 보내고 싶습니다.
☞ '프레시앙'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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