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삼성 비자금 의혹'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재용 씨 재산증식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다. 지난 12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개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의 재산증식 과정을 담은 문건('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에 따른 것이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재용 씨의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지분 매각과정에서 금융계열사를 동원한 그룹 차원의 조직적 공모 의혹이 드러났다"며 "특검과 검찰이 이들 사건은 물론 여타 사건에서도 이건희 회장 및 구조본의 개입을 입증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씨가 판 지분=삼성화재·삼성생명이 산 지분
1994년과 1995년 이재용 씨는 총 28만 주의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취득한다. 이후 유·무상 증자를 거치며 이재용 씨의 지분은 47만 4720주로 늘어났다. 이후 이 씨는 총 18억 6000만 원으로 인수한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상장 직후인 199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총 279억 3800만 원에 전량 매각했다. 약 260억 7800만 원의 매매차익을 거둔 것이다.
그럼 당시 누가 이 씨의 지분을 사들였을까?
경제개혁연대는 "1996년 말까지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주구성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삼성생명이 이 씨가 지분을 매각한 후인 1997년 6월을 기준으로 39만 주(지분율 6.5%)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즉 삼성생명이 이재용 씨 지원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드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또 1998년 삼성엔지니어링 사업보고서에 또 다른 금융계열사인 삼성화재도 새롭게 주주로 등장한다. 1997년 12월 말 현재 삼성화재의 지분율은 1.34%로 돼 있다. 삼성생명의 지분율 6.20%를 합하면, 두 금융기관이 보유한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율은 7.54%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1997년 12월 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보유 지분을 합하면 이재용 씨가 매각한 주식 수와 거의 일치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씨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매각과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지분구성 변화를 추적하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씨의 지분을 일거에 대량 매각함에 따른 주가폭락을 방지하고 내부지분율의 하락을 완충하기 위해 금융계열사를 동원한 그룹 차원의 조직적 기획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에스원도 마찬가지…이 씨가 얻은 이익 332억 원
똑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이재용 씨는 1994년 10월 최용순 씨와 에버랜드로부터 각각 2만 7000주와 9만 5000주씩 에스원 지분을 매입했다. 주당 가격 1만 9000원이었다.
1996년 1월 에스원이 상장된 뒤 이재용 씨는 같은 해 8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8만 주를 매각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삼성생명의 에스원 지분 매입이 이뤄졌다. 1996년 에스원 감사보고서에는 삼성생명이 1996년 12월말 현재 에스원 주식 9만1284주(3.97%)를 보유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재용 씨가 매각한 8만주, 그리고 그 기간 중에 있었던 유상증자와 무상증자에 삼성생명이 지분율만큼 참여했다고 가정해 이 둘을 합하면 주식량은 8만4948주가 된다. 삼성생명이 실제로 보유한 보유지분과 6336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후 이재용 씨는 1997년 2월 10만 1139주에 달하는 남은 에스원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같은 해 12월 말 삼성생명의 에스원 지분은 26만 4701주(9.95%)로 늘어난다. 이 역시 이재용 씨가 매각한 지분과 유상증자를 합해서 나오는 21만 9725주와 근접한 숫자다.
이재용 씨가 23억 원을 들여 매입했던 에스원 지분을 2년 4개월여 만에 매각해 얻은 차익은 332억 5200만 원이었다.
"금산법 피해보려 했으나…이미 위법행위"
문제는 또 있다. 이재용 씨가 삼성엔지니어링과 에스원 지분을 매각한 시점이다.
이재용 씨는 1997년 2월 5일과 17일 양일간에 걸쳐 이 두 지분을 집중 매각했다. 같은 해 3월 1일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금산법(제24조)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직전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 측은 금산법 시행일 이전에 이재용 씨가 매각한 주식을 금융계열사들이 떠안도록 한다면 금산법의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삼성 측이 금산법 시행 사실 자체를 몰랐다거나, 이재용 씨의 매각과 두 금융계열사의 매입 시점을 두고 '독립적 의사결정이 빚은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경제개혁연대는 "금산법 개정법률 부칙에 따르면 금산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것이어도 금감위의 별도 승인을 받지 않은 지분 초과보유는 위법한 것으로 규정했다"며 "따라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엔지니어링 및 에스원 지분 초과보유는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주식 떠안는 불법행위, 있을 수 없어"
경제개혁연대는 "금융감독당국은 삼성생명 및 삼성화재의 금산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며 "인지하고 있다면 왜 보험업법에 근거하여 제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동부그룹의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이 아남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산법 제24조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금융감독당국은 5% 초과 지분에 대한 매각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금산법에 시정조치권이 없었음에도 (구)보험업법 제15조(금융감독위원회의 명령권)에 근거해 이런 명령을 내렸던 것.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생명 및 삼성화재의 경우처럼) 심각한 이해충돌 위험에도 특수관계인이 매각한 주식을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떠안는 불법행위가 만약 선진국에서 벌어졌다면, 그 금융기관은 당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처럼 이재용 씨의 재산형성과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오늘날 삼성공화국 논란을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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