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마이클 클레이튼은 거대 대기업과 유명인사들의 은밀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로 나름 인정도 받고 돈도 잘 버는 거대 로펌의 변호사이다. 그의 존재는 일종의 사회악이다. 그래서인지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돈도 꽤 버는데도 그의 표정엔 만족감도 즐거움도 성취감도 없어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혼한 상태이고(미국에서 이혼이 무슨 대수겠냐마는), 도박벽이 있는 데다(남자가 잡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막대한 빚을 지고 마피아에게 빚독촉을 받는 상황이다(변호사 그만두고 벌어먹을 궁리를 하다가 그랬단다). 그가 다니는 로펌의 최대 고객인 U/노스라는 글로벌 대기업은 U/노스가 만드는 제초제 때문에 오랫동안 집단소송을 질질 끌고 있었는데, 그 사건을 맡고 있던 능력있는 베테랑 변호사이자 마이클의 친구인 아서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소송을 건 원고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체쇼를 벌여 유치장에 갇히는가 하면, 그를 빼내러 온 마이클을 붙잡고 잔뜩 흥분한 어조로 끊임없이 지껄인다. 아서에게는 조울증 병력이 있고, 그는 현재 약을 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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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클레이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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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가 갑자기 죽었을 때만 해도, 모두들 그가 자살한 줄 알았다. 마이클은 그에게 조울증 약을 다시 먹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서가 자살한 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고, 더구나 아서가 확보한 비밀 문건에는 U/노스의 간부들이 자신들의 제초자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들어있다. 이 문건을 손에 쥔 마이클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빚에 쪼달려 마피아로부터 쫓기고 있는 신세에다, 어차피 그는 구린 사람들의 밑 닦아 주는 자신의 일을 이제껏 너무나 잘 해왔지 않은가. (그의 별명은 심지어 '기적의 사나이', 즉 '미라클 워커(miracle worker)'이다.) 아서의 변화를, 갑자기 정의의 사자처럼 굴려는 아서의 행동들을 영 못 마땅해 한 게 바로 마이클이 아니던가. 이 문건은 얼마든지 값비싼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거대 대기업이 깨끗하고 양심적이며 불법행위 전혀 없이 기업행위를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 아무도 없다. 더욱이, 한국처럼 주식회사를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식에게 승계하는 것까지도 당연시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대기업이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더라도, 그저 '정도껏' 하기를,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있기를 (아무리 작은 이유에라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설득될 준비를 하고)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정도껏'이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건 우리 한국의 현실에서건, 탐욕스러운 대기업과 이에 맞서는 개인의 대결이 전개되는 양상이 너무나도 비슷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을 처음 폭로했을 때 삼성은 그를 미치광이로 몰지 않았는가. 하긴, 돌아보면 아서는 정말 미쳤고, 김용철 변호사도 미친 사람인지 모른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 목숨이고 사회정의고 간에 돈이 최고인 이 세상에서, 심지어 그 단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맛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용기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모두가 영혼을 죽이고서라도 돈이 주는 쾌락으로 달려드는 이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목숨을, 혹은 구속을 각오하고 정의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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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클레이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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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건 그러니까, '웬만큼'의 부정과 부패라면 그러려니 (기꺼이) 용인해 주는 이 관대하고 죄많은 세상에서, 너무 많이 해쳐먹으려(!) 하는 탐욕과 이를 가리려는 거짓 때문이다. 해먹어도 눈치껏 하고 숨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드는 데에까지 가면, 그저 얌전하게 떡값이나 조금 챙기고 살려고 했던 사람마저도 한순간 훽 돌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 미친 건지 그들이 미친 건지, 미친 사람 소리를 듣는 사람이 정말 미친 건지 그들을 향해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미친 건지. <마이클 클레이튼>이 보여주는 건 결국 '얌전하게' 더러운 세상에 순응하고 살려 했던 사람마저도 '미치게' 만드는, 해도해도 너무한 탐욕과 거짓의 본질이다. 그것과 마주한 순간 누군가의 영혼은 미치고, 누군가의 영혼은 끝없는 암흑의 나락으로 추락하며 마비된다. 그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고 책임 역시 그러하다. 정말 양심이 동해서건 나를 건드리다니 열을 받아서건, 그 거짓과 탐욕을 폭로하는 것은 결국 '미친 사람' 특유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고, 오랫동안 부당하게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이 영화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가 소위 '미치광이'가 되어 가까스로 탈출하는 '피로한 얼굴을 한' 영웅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토니 길로이의 꽉 짜인 각본과 연출, 언제나 매력적인 조지 클루니와 오랜만에 주연으로 나선 톰 윌킨슨, 지적인 틸다 스윈튼의 훌륭한 연기가 이러한 영웅들의 이야기에 더욱 다채로운 빛을 더한다. 11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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