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을 나와 쭉 이어진 점자블록을 따라 10분쯤 걸어 오면 간덴엘하트 정문이 나온다. 이 정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주차장과 작업장, 사무실, 편의시설은 전체가 무장벽(barrier free) 건물이다. 장애인의 일터와 장애인이 쓰기 편한 설비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결합돼 있다.
문턱이 없는 것은 기본이고, 벽의 전등 스위치는 일반적인 위치보다 낮은 곳에, 전원 꽂는 곳은 더 높은 곳에 있다. 휠체어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각 사무실마다 비상시 간호사를 호출할 수 있는 비상벨이 있고, 화재 경보가 울리면 청각장애인을 위해 모든 불빛이 점멸하도록 되어 있다. 사무실에 어지럽게 깔려 있기 마련인 전화벨, 컴퓨터 연결선 등등은 모두 바닥 아래로 묻어 휠체어가 다니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식당의 식탁은 휠체어가 안으로 쏙 들어가게끔 일반적인 식탁보다 높은 편이다. 식탁 의자도 각양각색으로 장애 유형에 따라 각자 편안한 의자를 골라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탈의실의 옷장도 일반적인 기준보다 높이가 낮아 휠체어에 앉은 채 옷을 걸 수 있다.
화장실의 변기 옆엔 키 낮은 샤워기가 설치돼 있다. 교통이 막혀 만에 하나 배설문제가 있을 때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설 뿐 아니라 급여 면에서도 소규모 작업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 가운데 가장 급여가 낮은 사람의 연봉이 200만엔(약 1500만원)이라고 한다.
이만한 조건이면 장애인들이 앞 다퉈 몰려들지 않을까? 결국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극히 일부의 운 좋은 장애인이 아닐까? 회사가 들려주는 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지적장애인에 비해 작업 효율이 더 높은 신체장애인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간덴엘하트의 나카이 시로 전무는 "신체장애인을 모집하는 게 어려워 전문알선회사를 통하고 있다"며 "고용한 장애인의 3개월분 급여와 보너스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알선사에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간덴엘하트는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의무 고용비율을 채우기 위해 대기업이 만든 특례 자회사고 매출 비율이 본사 80%, 그룹 관련사 9%다. 순수한 외부 일감은 11%에 불과하다. 결국 의무 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만든 회사가 아니냐는 다소 가시 돋친 질문에 나가이 전무는 "의무 고용률 문제도 있지만 사회공헌 사명감도 있다"고 답했다. 그는 "어느 회사에서건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있다"면서 "장애인 고용이 안 되는 건 결국 경영자가 무능한 탓"이라고 말했다.
나가이 전무는 장애인 고용과 경제 논리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에게 적당한 일감이 있는 경우,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했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은 없다는 것. 회사와 전문적으로 계약하는 산업의사는 의료보험에서, 장애인의 적응 문제를 도와줄 카운셀러는 국가에서 무료로 지원한다.
여기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기업이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간덴엘하트의 경우 연 2000만엔의 국가보조금을 받는다. 지난해의 경우 보조금 포함 순익이 1억엔을 넘어섰다.
주요 업무는 인쇄와 상품포장, 디자인, 원예, 메일서비스 등이다. 상품포장의 경우 영업은 신체장애인이, 포장은 정신지체장애인이 맡는 식이다. 그렇다고 장애 유형별로 사람을 뽑지는 않고, 업무별로 뽑는다. 94년 회사 설립 당시와 비교해 고용 인원은 28명에서 98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간덴엘하트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에게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런 질문의 밑바탕에는 장애인이니까, 장애인들이 주로 일하는 직장에 다니니까 뭔가 다른 답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돌아온 답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포장 업무 경력 9년차 니쿠라 씨는 "계속 실내 작업만 하는 게 스트레스"라며 "가장 보람 있는 건 책정된 업무 분량을 넘어섰을 때"라고 말했다. 장애인 작업장이니까 일반적인 회사와 '다른 점'을 찾으려는 우리의 눈에 비친 건 그저 평범한 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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