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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의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베오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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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의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베오울프>

[뷰포인트] 실제 배우들과 놀랍도록 닮은 애니메이션 속에 비극적 영웅담을 담다

8세기경부터 앵글로 색슨족에 의해 낭송된 베오울프에 관한 서사시는 대략 5 ~ 6세기를 배경으로, 50명의 남자에 필적할 힘을 가졌고 여러 괴물들을 물리친 바 있다고 전해지는 전사이자 영웅 베오울프의 영웅담을 다룬다. 그러나 게르만 신화 중 대표적인 영웅담에 속하는 베오울프의 이야기는 지금의 아일랜드에서 게일어로 전해지던 원래의 서사시에 의하면, 그의 영웅담과 모험보다는 "그토록 영광을 누렸으나 결국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방점을 찍고 있는 북유럽/게르만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는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이것이 아서왕의 모험을 비롯한 기타 켈트 신화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영웅시를 <스타더스트>의 원작자이자 영국 출신으로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판타지 소설가 중 하나인 닐 게이먼이 현대의 영어로 풀어냈고,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은 이 닐 게이먼의 버전을 원작삼아 화려한 3D 입체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베오울프
원래의 서사시에서 베오울프는 그렌델 모녀를 성공적으로 죽이고 이 외에도 수많은 괴물들을 죽이다가 50여 년이 흘러 왕국에 새로 나타난 황금 용과 싸운다고 한다. 그러나 닐 게이먼의 원작을 닐 게이먼 자신과 로저 애버리가 각색한 이 영화 버전에서 베오울프(레이 윈스턴)는 그렌델(크리스핀 글로버)의 어미 괴물, 이른바 동굴의 괴물(안젤리나 졸리)을 죽이는 대신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위험한 계약을 맺는다. 그리하여 (50여 년이 아닌) 30여 년 후 베오울프는 자신의 아들인 황금 용의 공격에 맞서 싸워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고대 영웅담에서라면 주로 영웅들을 돋보이게 해줄 트로피의 의미로만 존재했을 법한 여성 캐릭터들이 대폭 강화되는 한편, 영웅의 비극적인 면모가 다른 식으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상승-절정-쇠퇴라는 본래의 영웅담과 정반대의 방향, 즉 영웅의 추락-개심을 다루는 내용이 된 것이다. 베오울프를 유혹하는 동굴의 괴물이건 웬쏘 왕비(로빈 라이트 펜)건 그의 어린 연인이었던 어슐러(앨리슨 로먼)건, 여성 캐릭터들은 허세가 심하고 과시적이며 거짓말을 일삼고 유혹에는 약하디 약한 남성들보다 훨씬 도덕적이거나 현명하다. 동굴의 괴물이 특별히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특히 흐로스가(앤서니 홉킨즈)의 왕비였다가 베오울프의 왕비가 되는 웬쏘의 경우 아름답고 재주가 많으면서도 현명하고, 도덕적이고 고결하면서 심지어 관대하기까지 하다. 천하의 베오울프마저도 현명하고 부드럽고 그렇기에 더욱 강한 이 여성들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다. 그녀가 빛에 속하든, 어둠에 속하든. 결국 이 영화는 위대한 영웅이 어떻게 최고가 되었다가 죽음을 맞느냐보다, 빛의 여인과 어둠의 여인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는 이야기가 된다. 영화 버전의 베오울프는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빛을 간절히 염원하면서도 어둠의 품에 안기는 캐릭터이다.
베오울프

그렇기에 베오울프는 왕국과 모든 부귀와 권력을 얻었음에도 결핍감과 허무감을 채울 수가 없으며, 결정적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왕비와는 소원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영웅의 이러한 '어두운 면'은, 베오울프가 처음 동굴에 갔을 때 그를 맞은 동굴의 괴물이 "당신은 인간의 외양을 했을 뿐 본질은 괴물이다"라고 말하며 이미 한번 선언된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동굴을 찾아갔을 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곧 황금 용의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왕국을 공격하는 황금 용은 자신의 아들이자, 자신의 얼터-에고이다. (베오울프에게 목소리를 제공한 레이 윈스톤이 황금 용의 목소리도 맡고 있다.) 그가 안식을 찾는 것 역시 자신의 얼터-에고를 죽이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맞는 이후가 된다. 이것은 베오울프 이전에 흐로스가가 이미 겪었던 일이다. 베오울프가 동굴의 괴물과 계약을 맺었음을 눈치챈 순간, 흐로스가는 베오울프에게 왕권을 상속할 것을 선언한 뒤 그 스스로 죽음을 맞지 않는가. 현재의 저멕키스의 명성을 만들어 낸 작품들에서 알 수 있듯, 저멕키스의 영화적 관심은 언제나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주인공의 모험담을 놀라운 스펙터클의 형태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칼 세이건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콘택트>에서조차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기를 꿈꾸는 '소녀의 모험담'의 형태로 '우주여행'의 시각화를 시도한 바 있다.) 이러한 야심과 재능은 <베오울프>에서도 여전히 드러나며, 실제로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인물의 움직임과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딴 모션 캡쳐를 통해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의 배우들과 놀랍도록 닮은 영상을 보여주고, 어떤 스틸들은 실사인지 애니메이션인지조차 구분이 안 가게 보일 정도이다. 액션장면은 매우 화려하며, 전투 장면이나 폭풍치는 밤바다의 장면 같은 경우 대단한 장관을 보여준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헐리웃의 특수효과 기술이 어디까지 이르렀나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베오울프

그럼에도 역시, 이 영화는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며, 저멕키스가 사용한 이 기술은 아직은 미완성이라는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실제와 놀랍도록 닮았다고 하지만 몇몇 장면은 여전히 게임 화면 같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무수한 단역 캐릭터들은 종종 인체의 비례가 깨져있다. 주인공들 역시 특히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어깨높이로 들고 있는 장면에서는 팔이 종종 기형으로 보일만큼 비례가 맞지 않다.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물의 이미지나 모래 등은 매우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인물들이 타고 달리는 말은 종종 뚱뚱하고 다리가 매우 짧고 굵게 보여 코끼리를 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반면 수염이나 머리카락과 같은 털들은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듯 느껴질 정도. 영화를 통틀어서 나이가 든 위그라프의 영상이 가장 실물과 가깝게 보이는 편이고, 웬쏘 왕비나 어슐러의 영상은 <슈렉 3>에서의 그림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베오울프>가 보여주는 영상은 '신세계'라 표현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만큼 신비롭고 놀랍다. <베오울프>는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캡춰하여 영상을 만들었지만, 일찌감치 앤드류 니콜 감독이 <시몬>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쩌면 실제 배우의 움직임을 따지 않고도 100% 가상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머지않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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