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민망해지기 시작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인생에 대해 더 알고 있거나 최소한 세상에 대해 비슷하게 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비교적 가부장적 위계질서 속에서 성장한 이 사회 보통 남자들은 아랫 사람에게서 뭘 배운다는 걸 '쪽팔려'한다. 그래서 나 역시 되도록이면 '아랫 사람'들의 소설은 읽지 않아 왔다. 마음 속으로 늘 그렇게 얘기한다. 지들이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아?! 근데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읽을 소설이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세상과 이루어야 할 소통의 끈 하나를 놓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서서히 다시 소설을 잡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서 요즘 가장 신뢰하고 괜찮아 하게 된 '손아래' 작가가 바로 김연수다. 그는 최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발표했다. 김연수의 소설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이 90년대 초반 학번(그는 1970년생으로 아마도 89학번이거나 재수를 해서 90학번이었던 것 같다)의 경험이 8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팩트는 물론 달랐겠으나 그걸 겪으면서 느꼈던 불안,좌절,공포,허무함 등등이 크게 다른 곡선을 그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국 같은 나라의 역사는 짧은 시간동안 '지랄스럽게' 오류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김연수 같은 작가를 그의 위아래 세대 모두가 비교적 쉽게 접근하고 또 공감케 하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군. 이 친구도 똑 같은 경험을 했군. 이 친구도 그래서 지금 이렇게 쓸쓸하군,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지금의 30대와 40대 혹은 50대까지 사실 마음을 툭 터놓으면 정치와 경제, 사회와 같은 핫하면서도 하드한 주제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요즘 시끄러울까. 왜 너도 나도 이렇게까지 악악대며 살아가는 것일까. 보수들 가운데서도 참보수니 진정한 보수니 난리고 진보 가운데서도 사이비니 정통이니 말들이 많다. 왜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도 이 야단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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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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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신작 <로스트 라이온즈>는 그런 의미에서 생각할 거리를 한아름 안겨주는 작품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중심 축의 이야기 셋이 거의 완벽하게 배우들 간의 다이얼로그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은 마치 오후 한나절 가장 졸린 시간에 들어야 할 사회철학 강좌처럼 느껴진다. 공화당 상원의원 재스퍼 어빙(톰 크루즈)은 40년 경력의 베테랑 여기자 재닌 로스(메릴 스트립)를 불러 미국의 對이란 전을 준비하는 대규모 전투에 대해 독점 인터뷰를 하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는 스티븐 멀리 교수(로버트 레드포드)는 전도가 유망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학에 환멸을 느낀 것처럼 보이는 학생 토드 헤이즈(앤드류 가필드)를 불러 그를 타이르려 한다. 스티븐 교수는 얼마 전 자신이 아꼈던 학생 두명, 곧 어니스트와 아리안이 스스로 지원,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나간 것을 두고 곤혹스러워 하던 차다. 오로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톰 크루즈-메릴 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앤드류 가필드의 정치적 논쟁, 고담준론의 토론은 안 그런 것 같지만 지금의 미국사회에서 영화감독이나 배우들이 정치인들보다 더 정치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사회와 국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혹자는 흔히들 그렇게 얘기한다. 영화배우들이 정치를 알면 얼마나 알아!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신들, 영화 좀 보고 배우지들 그래.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고 사색의 계절이다. 대선을 치르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봐야할 영화들을 먼저 챙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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