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엔 음악 영화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미 1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원스>를 비롯해 베토벤의 말년을 다룬 <카핑 베토벤>도 꽤 괜찮은 흥행세를 기록했다. 곧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도 영화를 통해 부활한다. 이달 하순에 또 한 편의 음악 영화가 가세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그 주인공이다. 전설로 남은 가수들을 다룬 음악 영화라면, 그들의 존재감과 시대성을 뛰어 넘는 음악의 힘만으로도 한 수 먹고 들어간다. 레이 찰스를 다룬 <레이>가 그랬고, 이 영화 <라비앙 로즈>가 그렇다. 위대한 가수의 지난한 인생 역정을 담아내는 전기 영화의 틀에,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음악이 눈과 귀를 한꺼번에 감동시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연출의 몫은 그녀의 생을, 그리고 그녀의 음악 세계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집중될 터. 감독 올리비에 다한은 전기영화의 선형적인 구성을 버리고, 자주 시점을 오락가락하며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다시 꿰맞춘다. 꼬부랑 할머니가 돼 고개 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말년의 에디트를 비추다가, 뜬금 없이 중년기의 완고한 그녀를 보여준다. 다시 사랑의 열정에 눈 먼 한창 때의 그녀로 돌아갔다가 숨겨왔던 상처를 애써 보듬는 죽음 직전의 회한으로 유턴한다.
|
|
라비앙 로즈 |
보는 이들은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너무 산만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만 한 구성이다. 그 방식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 예술가의 파편적 순간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하나의 맥락이 가슴으로 확인된다. 그것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삶의 보편성이다. 감독은, 매춘굴과 서커스단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 프랑스 최고의 여가수로 등극하기 까지의 그녀를 단순히 인간 승리나 위대함이라는 칭송적 수사에 가두지 않는다. 우린 그저 열정과 회한으로 점철된 한 인간의 특별하되 특별하지 않았던 삶을 목격할 뿐이다. 예술이란 그렇게 우리 삶의 통찰적 은유가 아니던가. 어쩌면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곡을 듣기 위해, 그 산만한 구성의 숲을 헤매며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이 곡을 듣는 순간에 이르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덧붙임) 에디트 피아프의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마리온 코틸라르의 연기는 대단하다. 이런 배우들이 프랑스 영화의 힘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