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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상경 집회 '원천봉쇄' 적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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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상경 집회 '원천봉쇄' 적법성 논란

법원도 1, 2심 판결 엇갈려

서울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 농민대회에 참석하려는 노동자와 농민들, 이를 막으려는 경찰. 이들이 지방의 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됐다. 특히 경찰이 이렇게 지방에서부터 이동을 막는 '원천봉쇄'가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에 대해 법원은 상반된 해석을 내리고 있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의 판결은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형사합의부(신용석 부장판사)가 내린 '불법'이라는 판결과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김상준 부장판사)가 내린 '적법'이라는 판결이다. 특히 이 두 판결은 동일안 사건에 대해 내린 1심 판결과 2심 판결로 '원천봉쇄'의 적법성에 대해 엇갈린 해석을 내리고 있다.

1심 "경찰 원천봉쇄 불법"

사건은 이렇다. 한미FTA 반대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충북 제천의 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민자치센터에 모여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이 때 경찰은 주민자치센터 입구를 경찰 지프차와 순찰차로 막고서 농민들이 빠져나오지 못 하게 했다.

이에 격분한 농민회 회원 한 명이 바닥 하수구 맨홀 뚜껑을 집어 던져 경찰 지프차의 뒷 유리창을 깼다. 또 한 명은 발로 순찰차를 걷어 차 앞 휀더 부분을 찌그러뜨렸다. 이들은 특수공무방해치상, 폭력행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에 대해 1심인 제천지원은 공무집행방해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서울집회와 같이 전국적으로 사람이 모여 대규모로 집회 또는 시위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른바 불법집회에 해당하는 경우에 국가 경찰작용으로서는 집회가 예정된 한 장소에 대규모 집단으로 집결하기 이전에 각 지역마다 비교적 소규모의 집회참가자를 제지하여 분산시키는 이른바 원천봉쇄가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데다가 위와 같이 경직법은 경찰관이 범죄예방을 위해 관계인에게 경고를 발하고 나아가 그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그 범죄행위의 명백.현존성과 중대.긴급성을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과 효과성만을 이유로 집회참가자에 대하여 각 지역에서 출발을 제지하는 이른바 원천봉쇄라는 경찰관의 직무집행이 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경직법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만 경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한편(제1조 제2항), 만일 이를 남용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점(제12조), 뿐만 아니라 집시법 제18조와 집시법시행령 제9조의 2는 이미 개최된 불법집회를 해산함에 있어서도 경찰관으로 하여금 우선 종결선언과 자진해산을 요청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만 3회 이상 자진해산 명령한 후 직접해산토록 정하고 있는 점 등까지 고려해 보면, 위와 같은 원천봉쇄 조치가 정당화될 수 없다(전국적 규모의 집단적인 폭력적 집회 또는 시위가 빈발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집회.시위문화일 뿐이고, 그렇다고 하여 경찰권의 발동 요건도 그에 상응하여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친절하게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절도의 목적으로 준비하여 집을 나선다는 사실을 경찰관이 알게 되었다고 하여도, 이에 대하여 설득하거나 회유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집에서 아예 나가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에 따라 공무집행방해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공용물건손상'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두 피고인에게 각각 벌금 100만 원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 고속도로 입구에서 '원천봉쇄'를 막고 있는 경찰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 사진은 11일 오전 정읍IC. ⓒ뉴시스

2심 "원천봉쇄 적법"

그러나 이런 판결은 항소심에서 깨졌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김상준 부장판사)는 지난 31일 "금지 통고된 불법집회 참가를 저지하려는 경찰의 조치는 적법하다"며 지프차 유리창을 깬 피고인에 대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및 80시간 사회봉사와 40시간 폭력치료강의 수강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단 요지는 다음과 같다.
1심의 판단은 경찰권의 발동 및 행사에 관한 법문의 문언 그대로의 자구(字句) 내용에만 얽매이고 법의 취지와 법이 적용되는 현실을 두루 고려한 합목적적인 해석까지 금하고 있다. 이 사건 집회가 정부당국으로부터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하고 교통소통을 위해 제한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금지통고된 점, 피고인 등이 제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출입로 봉쇄에 대해 피고가 배수로 철 구조물을 던져 경찰 지프차 뒷유리창을 파손한 점, 피고가 불법집회에 참가할 의사를 명백하게 밝히고 그에 따라 상경을 위해 승합차에 탑승한 점, 집시법 위반 등의 범죄행위를 저지를 것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점 등을 감안, 원천봉쇄 조치는 적법한 경찰권발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합목적적인 해석이다.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 날 직전에 내려진 이 판결은 경찰이 자신있게 '고속도로 원봉'에 나서게 된 배경이 됐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측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집회 장소 차단도 문제이지만, 지방에서부터 집회 참가자들의 길목을 막아서는 것은 기초적 기본권인 '이동의 자유'까지 막는 과도한 행정집행이라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진보연대의 한 관계자는 "경찰의 집회 금지 판단 근거는 '폭력 불법시위 전력이 자'인데, 그런 잣대라면 앞으로 한국에서 집회를 할 수 있는 단체는 거의 없다"며 "과거 보수 단체도 도로를 점거하고 낚싯대로 경찰을 폭행해 유죄를 선고 받은 적이 있는데, 왜 이들에게는 집회를 금지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반면 경찰에서는 "이들의 상경은 금지된 집회에 참석하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효율적 국가 공권력 집행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원천봉쇄' 논란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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