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 25: 천민적 재벌행태 청산해야 (홍종학 경원대 교수)
한국재벌의 소유구조는 복잡하다. 각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해 반복적으로 출자하는가 하면 심지어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결과 총수 일가는 5% 미만의 적은 지분을 가지고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총수의 자손을 위해 특정 계열사를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물론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인데 이러한 불법적 상속행위를 제재할 아무런 규제가 없다.
최소한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는 이렇게 기형적 소유·지배구조를 지닌 재벌을 찾아볼 수 없다. 유럽에서도 소유구조는 복잡하지만 채권은행 또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나 감사기능으로 인해 총수의 경영권은 견제된다. 투명한 조세행정과 높은 세율로 총수가 불법행위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제라는 강력한 처벌조항으로 인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계열사 출자나 계열사와의 거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미국은 일찍이 1930년대에 경제를 왜곡하던 기업집단을 해체하였다. 당시 기업집단의 복잡한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계열사 배당금에 대한 중과세 법안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독립기업을 위주로 한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마치 한국만이 재벌에 대해 과도한 규제가 있는 것처럼 언론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그 결과 계열사 출자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끊임없는 예외 인정과 규제완화로 인해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에게 은행의 소유까지 맡기겠다며 금산분리 원칙마저 부정하는 것은 자칫 대공황을 불러온 천민자본주의로 회귀할 위험까지 안고 있다. 재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국의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 개혁과제이다.
이를 위해 첫째, 재벌의 비자금 조성이나 뇌물공여, 정치자금 제공 등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단죄해야 한다. 둘째, 총수를 위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계열사와의 거래를 규제할 수 있도록 회사기회편취를 규제해야 한다. 셋째, 유럽식으로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거나 아니면 미국식의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여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해야 한다. 주가조작 등 특정행위에 한정되어 있는 집단소송제의 대상을 넓혀서 총수의 불법적 행위를 전면 규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을 소유한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에 준하는 규제의 대상이 되도록 하여 그들의 금융기관 소유를 억제해야 한다. 재벌의 은행 소유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의제 26: 비정규직 반으로 줄여야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88만원 인생'으로 비유되는 비정규직.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의 하나다. 기업들은 당장 인건비를 절약하고 각종 노동복지의 부담을 덜어 좋아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이들의 노동생산성과 구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거시경제는 물론 가계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
비정규직의 유형 또한 다채롭다. 가장 흔한 기간제근로에서부터 단시간근로, 일용근로, 아르바이트, 파견근로, 용역근로, 단기호출근로, 재택가내근로, 지입운전자, 프리랜서 등등. 이러한 비정규직이 노동단체 통계로는 850만 명을 넘어 전체 임금근로자의 60%선에 달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이런 비정규직이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그들과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가 심해져 2005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2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를 방치한 채, 어떻게 양극화를 해소하고 선진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 비정규직법이 발효되어있지만 해법은 근본적인 노동시장의 개혁에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왜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 그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같은 격차는 해소되어야 한다.
이 같은 격차의 해소는 임금체계를 현재의 연공급에서 직무와 숙련 및 직능 중심의 체계로 개편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즉 그것은 학력과 근무연수, 지위 등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던 관행을 수행하는 직무와 숙련 그리고 능력에 따른 직무수행성과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도록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단순노무직과 고령자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은 상당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또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기조가 확보되어야 한다. 같은 종류의 노동강도와 직무에 대해 동일임금이 지불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사용자나 노동자 그 누구에게도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비정규직에 그 적용이 배제되고 있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기업복지의 격차를 보편적 국가복지로 흡수한다면 비정규직 사용 유인은 더욱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사회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데 사회적 타협이나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의제 27: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김호균 명지대학교 교수)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특히 '비정규직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급증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커다란 결단과 대타협이 절실하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주요 선진국의 사례, 즉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의 사례에 대한 연구도 이미 상당 정도 이루어져 있고, 한국 노사정위원회의 기여와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진지 오래다.
계급, 계층간 대립이 고착되어 있는 사회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구성원의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공통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대타협의 출발점은 모든 당사자의 공통이익에 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노사관계에 국한해 볼 때 이러한 공통이익은 고용(일자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이 일자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자본에게도 자동화가 아무리 진전된다 해도 살아 있는 노동이 없으면 축적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사회적 대타협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무엇보다도 활발한 수출경기로 이익을 보고 있고 해외탈출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고 있는 대기업과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상태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타협은 위기대응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항시적인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당사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져야 하고, 특히 중재자로서 정부는 집단이익과 공익을 명확히 구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상황에서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협상 당사자 사이에는 반드시 양보와 타협의 '주고받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고용의 유연안정성이다.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과 비정규직 고용의 극단적인 유연성은 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정규직 고용의 유연성이 높아짐으로써만 비정규직 고용의 극단적 유연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유연안정성이 정착되려면 실직상태가 절망상태가 되지 않도록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 인식과 이론적 준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전반적인 신뢰의 위기이다. 신뢰와 대타협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대타협을 먼저 추진하고 약속이 지켜짐에 따라 신뢰가 축적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타협이 추진되기 때문에 투명성, 일관성, 합리성이라는 신뢰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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