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향한 욕망도, '자유'를 향한 욕망도 과거에 비해서는 보다 깊숙이 충족되고 있는 셈이다. '밥'과 '자유'는 인간이 욕망하는 가장 대표적인 대상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보다 더 '인간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산업화·민주화 먼저 달성한 선진국 향한 열망이 지배한 반세기
'그렇다'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이유가 뭘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에서 문학평론가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길잡이로 나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연속 강연의 마지막 순서에서다. 김 교수의 강연은 1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진행됐다. (☞ 강연문 전문 보기)
"인간적 사회를 위하여-산업화의 민주화의 반세기를 돌아보며"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일단 "한국의 근대화, 즉 산업화와 민주화를 양대 축으로 하는 근대화는 그 동안 억눌려 있던 많은 인간적 소망과 욕망을 해방하였다"고 인정했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의 가장 강렬한 두 가지 열망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열망을 추구하는 과정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 한정되지 않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먼저 달성한 나라, 즉 선진국에 대한 선망은 한국인의 자아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기로에 선 한국, 해방된 욕망은 새로운 체제에 포섭
김 교수는 이런 자아의식에 대해 "한국 사회와 인간의 지배적인 담론 형성, 사회적 주체 형성의 기제인 집단주의, 민족주의에 의하여 강화된다. 그러나 선진 후진의 세계적 선망의 제체에서, 한 사회가 일단 선진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대안을 생각할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이 현실 변증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근대화 과정에서 강화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이 됐고, 산업화를 통한 생산력 발전은 생태적 한계에 가로막혀 있다.
결국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정 수준의 생산력에 도달한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어떤 길을 따라 가야하는가.
여기서 김 교수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해방된 우리의 욕망이 새로운 체제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했다.
욕망을 쏟아 부을 새로운 대상을 미처 찾지 못한 상태에서 온갖 거대 프로젝트가 기획됐고, 우리의 욕망은 이런 프로젝트의 회로를 따라 흐르게 됐다는 것.
실제로 절차적 민주화와 산업화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 뒤에 들어선 현 정부, 그리고 다음 정부를 이어받겠다고 나선 이들이 '밥과 자유'만을 향해 내달렸던 지난 세기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없이 과거 산업화 세력이 추구한 것과 별 차이 없는 거대 프로젝트만을 쏟아낸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적 삶의 이상에 세심한 주의를"
그렇다면 2007년 11월의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밥과 자유'를 향한 욕망이 일부나마 충족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으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해 내달렸던 질주를 다시 가속화해야 하는가.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 교수 역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적할 따름이다.
김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해방의 열매를 보전하면서 인간성을 본연의 가능성으로 돌려 놓고 체제의 비인간적 진행을 수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제의 거대화가 가져오는 비인간화"라며 "설사 체제의 지속이 사회 발달의 추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거대 프로젝트의 강박에서 풀려나게 하고 인간적인 삶의 이상에 세심한 주의를 돌리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회적 발전의 체제는 옹호되면서도 인간주의적 해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라는 명제 앞에서 거대한 토목공사만 떠올릴 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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