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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진정한 궁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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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진정한 궁녀들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나는 <궁녀>가 두렵다. 영화의 내용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두렵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얘기지만 이 영화는 여자 제작자에, 여성감독, 여자 배우가 주역인, 이른바 '여성천국' 영화다. 제작은 영화광고의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렸던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가, 연출은 <왕의 남자>의 연출부에서 일했던 김미정 감독이 맡았다. 여주인공은 박진희다.(내가 요즘 좋아하는 여배우 3인방은 이 박진희와 함께 임수정과 배두나이다. 뒤의 두 여배우는 웬지 인디적이거나 비주류적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 이에 비해 박진희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느낌을 줘서 좋다. 박진희의 영화는 웬지 올바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적어도 일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 다른 영화들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 여성 트리오를 보면서, 국내 영화계가 진정으로 '알파 걸'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1995년에 나왔던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을 생각해 보라. 남자 제작자와 남자 감독, 남자 배우들에 의해서만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이제 완벽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대가 됐다. 남자들은, 적어도 영화판의 남자들은 이제 '베타 메일'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궁녀
그렇다고 국내 영화계의 여성들이 우먼파워의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힘을 얻게 된 것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데에서 새로운 영화시대의 흐름이 읽혀진다. 사회는 사회대로 여성들이 서서히 절대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했지만 영화계 내에서 여성들이 입지를 다지기까지는 혼신의 노력이 경주돼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궁녀>를 만든 정승혜 프로듀서도 그렇지만 요즘들어 주요 제작자군에 올라선 많은 여성 제작자들은 10여년전 남자 제작자들과 남자 감독들 밑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고생을 한 홍보마케터 출신들이다. 한마디로 밑에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해 한 단계 한 단계 영화계 내 중심권으로 진출한 인물들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영화 일이라면 당연히 A부터 Z까지(기획에서부터 제작,마케팅,배급까지) 통달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남자들이 그동안 연출이니 촬영이니 하며 '큰 일'만 하겠다고 '철없이' 구는 동안 여성들은 가장 허드렛 일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인정을 받아냈고 결국 가장 중심이 되는 일까지 하게 됐다. 남자들이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노는 동안 여자들은 끊임없이 '영화 노동'을 해왔으며 그런 덕분에 남자 영화인들보다 더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됐다. 만약 학생들에게 프로듀서가 되는 길 혹은 영화감독이 되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면 이런 여성 영화인들의 지난 시절을 소개하면 딱이다 싶을 정도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김미정 감독의 이번 영화에 녹녹치 않은 장인정신이 깃들여져 있는 건 그때문이다. 김미정은 내친 김에 이번 영화를 통해 국내 영화계를 두텁게 싸고 있던 몇가지 불문율을 깨뜨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는 몰라도 영화라면 사극은 잘안된다는 것(의상이나 세트에 들어가는 제작비 대비 수익이 잘 나지 않기때문에), 공포영화나 미스터리 스릴러는 여성관객들로부터 외면받는다는 것, 또는 여성감독은 사극이나 공포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 등이다. 뒤의 두가지는 여성감독이 묘사해 낸 여성주의적 공포가 궁극적으로는 여성관객들을 끌어 들여 이 영화를 흥행에 성공시키게 함으로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궁녀>의 모든 사건과 공포는 적자를 낳아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여자들과 그 비리에 맞서 시대적 규율을 뛰어넘어 진범을 찾으려는 주인공의 대립각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 근데, 그딴 거 잘 모르겠다. 그저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인 만큼 이 영화가 흥행에서 대박을 쳤으면 좋겠다 싶을 뿐이다. '궁녀'들이 영화판의 여럿 목숨을 살렸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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