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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웬 까탈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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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웬 까탈이냐"고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37> 이주노동자는 동원 대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보니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단체가 만들어진 때가 1992년 5월인데, 초기 몇 년간 이 일을 했던 활동가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너네 한국사람 맞아?'라는 한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어떤 활동가는 사업주에게 실컷 욕먹고 나서 '내가 왜 매국노 취급을 받아야 해'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요즘도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예전과는 감도가 다르다.
  
  예전에는 '왜 한국인이 한국인 편을 들지 않고 외국인 편을 드는 거지?'는 말을 조금치의 주저도 없이 내뱉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다.
  
  그렇지만 요즘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 각계에서, 심지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까지 이주노동자에 국제결혼한 외국인여성들에게, 그 자녀들에게까지 지원하겠다고 팔 걷고 나서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민관을 불문하고, 복지단체로부터 예술단체에 이르기까지 아주 폭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이주자들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단체들이 우리 같은 상담소를 빠뜨리지 않고 연락하고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문화체험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주로 답사-관광-한국음식체험-예술공연 프로그램 등이다.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한 존재'인데, 이런 프로그램들에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의도는 참 고맙다.
  
  그런데 이런 고마운 의도로 연락하는 단체들 중에 우리를 당혹스럽고 심지어는 화가 나게 만드는 단체들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마치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고, 외국인노동자들이 그런 프로그램들에 참여해서 '즐길 수 있으려면' 어떤 사전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고, 이쪽의 입장과 노고를 이해할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전화를 받자마자 '우리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해서 이런이런 프로그램을 시행하려고 한다. 그쪽에서는 얼마나 참여하실 수 있는지'라는 질문을 하는 단체들도 있다.
  
  그러면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다. '뭔지 일단 보내보세요.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물어보겠다.' 그러면 그런 단체일수록 '우리 프로그램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 라고 또 묻는다.
  
  그래서 '일단 자료를 보내면 외국인들에게 홍보는 해주겠다. 그런데 얼마나 갈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면 '그럼 그쪽에서는 많이 참석못하는 거네요'라고 한다.
  
  어떤 단체는 그러면서 끝내 자신들이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몇 명이 참가할 수 있는지만 묻기도 한다.
  
  물론 모든 단체가 이렇게 무례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을 모를 뿐만 아니라 알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지원단체의 활동가들이 그런 프로그램에 대해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소통하고 홍보하는지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제안이 오면 우리들은 가장 먼저 문서로 된 홍보물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홍보물에 대해 한국어를 잘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번역을 부탁한다.(무료번역이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번역한 홍보물은 그냥 프린트해서 한국어 홍보물과 함께 사무실에 붙여놓는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 그룹의 리더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인지, 여기에 참석하면 어떤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는지, 하루 10-12시간씩 노동하고 일주일에 단 하루 맛볼 수 있는 휴식의 기쁨을 포기할 만큼 가치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자국의 문화 중에 유사한 것이 있으면 덧붙여 설명해준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들 그룹의 리더들은 다시 자국민들에게 자국어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렇게 해서 가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이번에는 그곳까지 어떻게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때로는 한국인 길잡이를 붙여주어야 할 때도 있다.
  
  제대로 일을 하는 지원단체라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이주노동자들에게 홍보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설사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국에 어떤 문화가 있고 그런 공연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지식으로 알게 된다. 이헐게 해야 하기에 일상적으로 상담을 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프로그램 홍보 소개는 또 다른 만만치 않은 일이 된다.
  
  이런 세세한 과정을 바깥에서야 알 리 없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홍보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해서 제안한 단체의 의도대로 지원단체나 이주노동자들이 움직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곡해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가장 화가 날 때가 '우리는 외국인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우리에게 쏘아붙일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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