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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쏘시개'로 끝난 손학규, 왜 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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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쏘시개'로 끝난 손학규, 왜 졌나?

'대세론'에 안주...캠프내 소통 부재에 리더십 허점도

지난 2월 한나라당을 전격적으로 탈당해 범여권으로 강을 건너 온 손학규 후보의 '모험적' 대선 행보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손 후보는 낙선자 인사에서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경선 승복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탈당 직후부터 항간에 떠돈 예언대로 '대선 불쏘시개' 역할로 끝난 그가 범여권에서 의미 있는 정치인으로 착근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특히 손 후보 지지세력이 구(舊) 열린우리당 출신 386 의원, 구 민주당 원외위원장 그룹 등 '손학규 대세론'을 기대해 모여든 '다국적군'인 탓에 본선진출에 실패한 이상 그의 지지세력은 공중 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부터…"

정치권에서는 손 후보를 두고 '한나라당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극한 대치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고 경선 이후 당내 소장파를 이끄는 수장으로 남아있었더라면 적어도 차기 정부에서 총리나 대권주자는 '떼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손 후보 측에서는 이러한 가설을 부인한다. 한나라당이 '영남 지역주의'를 대변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이명박 후보로 극단적으로 갈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손 후보의 입지는 없었다는 반박이다.

대신 손 후보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 당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보다 강화해 범여권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야 했다"며 "그래야 탈당 이후에도 '한나라당의 개혁을 위해 분투했으나 실패해 건너왔다'는 명분이 보다 먹힐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이켰다.

이러한 지적은 범여권으로 건너온 이후 자신의 탈당과 한나라당 이력을 범여권 핵심 지지층에게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으로 이어진다. 지난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6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작업에 참여하기까지 3개월의 기간 동안 '정지 작업'에 실패했다는 자평이다.

당시 손 후보와의 절친한 우정을 강조해온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손 후보의 정체성을 겨냥한 공세에 대해 "범여권 후보는 아니지만 반(反) 한나라당 후보"라고 감싸줌으로써 보다 쉽게 범여권에 입성할 공간이 열렸지만 정작 그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구애'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손 후보 캠프에 합류해 있는 한 의원은 "캠프가 구성됐던 초기 손 후보에 대해 탈당과 한나라당 이력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과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러나 손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더러 다른 캠프 구성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정치 컨설턴트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손 후보가 당내 경선과 본 경선의 전략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의 다른 관계자는 "그런 의미에서 손 후보를 두고 '반(反) 한나라당 후보지만 범여권 후보는 아니다'라고 했던 김근태 전 의장의 말은 적절한 예언이었던 셈"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 손학규 후보가 지난 21일 선대위 해체 선언을 한 뒤 지지 의원들과 함께 기자실을 나서던 모습. ⓒ뉴시스

"대세론에 젖었다"

하지만 패인을 분석하는 손 후보 측의 시각은 이 시점보다는 본경선과 예비경선 룰을 합의하던 시점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우상호 대변인은 "당시 우리 스스로 '손학규 대세론'에 취해 안이하게 합의해준 측면이 있다"며 "멀리 보면 예비경선에서 1인2표제에 합의해 정동영 후보에게 근소한 추격을 허용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본경선 룰 공방에서도 여론조사 반영 비율 50%까지 주장하던 것을 10%로 물러서 합의한 것이나 손 후보의 전략지역인 서울·경기지역 순회경선을 가장 후순위로 배치한 것도 순회경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학규 대세론'에 취한 안이한 대처로 지적된다.

우 대변인은 "손 후보는 '좋은 정치,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건너와 경선 룰 싸움을 벌이지 않고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해 준 것이 결과적으로 조직·동원선거를 허용해주는 셈이 됐다'고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 경선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예상하지 못하고 '완전 국민경선을 치르면 뜬다'는 2002년 민주당 경선의 환상에 젖어있었던 것도 패인으로 지목된다.

정동영 후보 측은 선거인단에 등록되면 무조건 투표인으로 등록되는 완전국민경선의 성격을 간파하고 일찍부터 조직구축에 들어간 반면 손 후보 측은 2차 민심대장정을 벌이는 등 이미지 구축에만 신경을 썼다는 비판이다.

캠프 내 소통 부재…리더십 허점 노출

또한 지도자로서의 리더십 평가와 직결되는 손 후보 자신의 위기 대처 능력도 문제로 지적된다. 손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게 1위를 내준 초반 4연전 이후 이틀간 잠적하는 소동을 벌였다. 또 잠적 이후 돌아와 캠프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선대위를 해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우 대변인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라고 토로했고 이후 손 후보가 모바일 투표로 되살아나는 기미가 보이자 "후보가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이대로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는 표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느닷없이' 해체되기 전부터 손학규 후보 캠프는 후보와 소속 특보단 의원 등 캠프 관계자 간 소통의 문제가 자주 불거졌다. 본경선 룰을 합의하면서 캠프 자체적으로는 '여론조사 10% 안'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정했으면서도 손 후보 자신은 오히려 "여론조사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발언만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소속 의원들은 '진의는 그게 아니다'라고 해명하다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또 캠프에서 후보와 상의 없이 공식 일정을 정하고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공식 일정이 뚜렷한 이유 없이 바뀌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이에 대해 신당의 한 초선 의원은 "후보와 지지그룹 간의 신뢰는 중요한 문제"라며 "이를 잘 관리하는 것도 후보의 능력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캠프에 초재선 의원들 밖에 없어 후보를 보좌하면서 캠프를 이끌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손 후보 캠프는 선대위원장을 공석으로 비워둔 채 재선인 김부겸 의원이 부본부장을 맡아 이끌었으나 후보까지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이후 손 후보가 이틀간 잠적을 감행하면서 유인태, 문희상 의원 등이 합류할 가능성이 나돌기도 했으나 바로 선대위가 해체되면서 불발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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