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일어난 버마(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찍은 한 동영상에는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절규를 쏟아내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단호한 표정으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맨발의 승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굳게 손을 맞잡은 시민과 창가와 옥상에서 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진압봉으로 방패를 두드리며 다가오는 군경에 맞서 돌멩이를 손에 쥔 채 버티고 서 있는 청년들…. 지난 9월 일어난 버마의 민주화 시위를 담은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최근 많은 언론은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나올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은 시민을 거리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폭력에 굴하지 않던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접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발상 아닐까.
몰상식한 군정의 독재에 수십 년간 시달려온 지친 버마인들이 '희망'으로 믿는 인물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1988년 이후 버마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른 아웅산 수치다.
그의 수필집 <아웅산 수치의 평화>(이문희 옮김, 공존 펴냄)가 최근 번역돼 출간됐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저자가 첫 번째 가택 연금에서 해제된 1995년 11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버마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것이다.
아웅산 수치는… 1945년 양곤에서 아웅산 장군과 양군종합병원 수간호사 마 킨 치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60년 인도 주재 버마 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사실상 망명을 떠났다. 1964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 이후 UN 뉴욕본부에서 일하다 1972년 티베트 출신의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해 부탄에 정착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을 하던 그는 1988년 4월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귀국했다가 그해 8월 '8888항쟁'을 고국에서 맞는다. 당시 수 치는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야당과 민주세력을 망라한 민족민주동맹(NLD)을 창설했다. 1989년 가택연금에 처해진 뒤 NLD는 1990년 82%의 지지를 얻으며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다. 1991년 수치는 군부 독재에 맞서 비폭력 항거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가택 연금이 반복됐으며 2007년 5월에는 군부가 약속한 연금 해제가 느닷없이 1년 연기됐다. |
군부독재에 파괴된 버마의 문화와 삶
수 치는 이 책에서 결코 어려운 이론이나 추상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버마의 민속 명절과 전통 문화, 버마의 민족적 특색을 '편지'마다 조근조근 소개하며 아름다운 풍속이 군정 아래 어떻게 파괴돼 갔는지 알려준다.
"예부터 버마에는 여인숙이나 호텔 같은 것들이 없었습니다. 타지 사람들은 필요한 시간만큼 친구나 친척 집에서 머물러도 됩니다. (…) 그런데 요즘은 손님 맞는 일이 더 이상 간단하지 않습니다. 혹시 친구 집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너무 늦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묵고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실을 저녁 9시 이전에 관할 법질서회복평의회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버마인들이 겪는 절망감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통해 풀어놓았다. 최근 버마에서 폭등한 유료와 가스비는 민주화 시위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버마인은 아침으로 주로 볶음밥을 먹습니다. 볶음밥은 대개 지난 저녁에 먹고 남은 야채나 고기나 새우를 밥과 함께 볶아 만드는데, 이따금 달걀 한두 개를 풀어 넣기도 합니다. (…) 그런데 요즘은 아침 볶음밥의 내용물이 부실해진 집이 많습니다. 달걀이나 중국식 소시지는 사치요, 한때 서민들이 즐겨 먹던 찐 콩도 이제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고기 값이 크게 오르면서 버마인들의 아침 볶음밥에는 이제 채소만 무성합니다. 채소마저도 양껏 넣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채소 값이 고기 값보다 훨씬 빠르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문화가 파괴된 버마 사회에는 대신 군부 독재가 만들어낸 '파시스트 디즈니랜드'가 자리잡았다. 버마를 찾은 한 외국인이 '미얀마 방문의 해'를 홍보하기 위해 버마 정부가 만든 대형 인형을 보고 내뱉었다는 이 말은 '아름다운 자연, 정 많은 심성을 가진 버마인'이 겪고 있는 암담한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버마의 반체제자에게는 삶이 지루할 새가 없다"
수치는 NLD 활동을 하며 마주쳤던 일들도 여러 '편지'에서 담담한 필체로 서술했다. NLD 전당대회를 막기 위해 도로를 봉쇄했던 버마 군정, 수치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이 경찰이 용인한 폭도들에게 습격을 당한 일 등 그가 묘사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삶은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돼 있었다.
그는 "버마의 반체제자에게는 삶이 지루할 새가 없다"는 말로 군정의 비상식을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삶을 대신 설명했다.
"끊임없는 정치적 박해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은 고도로 정치화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새 끌려간 사람은 없는지, 혹여 하루 동안 우리 당원들에게 무슨 무자비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지 않을까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생활과는 리듬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 인도주의자의 마음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버마와 수치가 처한 '비상식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수 치의 유일한 수필집이기도 한 이 책에는 군정의 통제로 인해 변변한 사진 한 장 실려있지 않다. 대신 버마 화가 헤잉텟이 그린 52컷의 스케치는 글과 함께 버마 현지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연재될 당시 버마에서 군부에 신고하지 않은 팩스를 이용해 저자의 글을 신문사로 전송했던 레오 니콜스는 군부에 잡혀갔다가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출판사는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서문을 받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수 치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불가능했다고 한다. 책머리에는 수 치 대신 NLD 한국지부장 아웅 민 수이 씨가 적은 머리말이 실려 있다.
"수 치 여사는 칼보다 강한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친구와 이웃이 버마의 현실을 직시하고 관심의 눈길과 도움의 손길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한 인도주의자의 마음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아직도 버마에서는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꿈틀대고 있다. 많은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은 정의와 상식이 폭력을 이긴다는 믿음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군정이 무너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바로 그 믿음으로 군부 독재를 마감했던 한국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는 버마인들에게 다시 한 번 연대의 뜻을 전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오늘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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