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린 기아차지부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지회, 사무직지회, IP지회와의 조직통합 승인안이 부결됐다. 찬성률은 46%였다. 집행부는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원칙에 따라 지난 4월과 9월, 이들 지회와의 통합을 선언했지만 현장 대의원들이 거부한 것.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해 있었던 비정규직들의 10차례의 라인 중단과 올해 9일 간의 파업으로 일부 현장 정규직들이 정서적 반발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직통합 결정은 정규직노조 집행부가 먼저 제안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온전히 껴안겠다는 의지 없이 생색내기만 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상당하다.
물거품이 된 '모처럼의 아름다운 소식'
지난 9월 3일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렸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등 곳곳에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부결되는 현실에서 기아차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조직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비정규직지회가 원청의 교섭 참여 등을 요구하며 화성공장 도장2부를 점거하고 9일 동안 파업을 벌인 직후였다. (☞관련 기사 :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5일째 전면 파업) 정규직노조는 이미 임단협을 타결한 후였지만 노조 집행부가 비정규직의 임단협을 위해 공동투쟁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파업도 끝이 났다.
금속노조에 소속된 대공장 가운데 비정규직과 정규직노조가 통합을 결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당시 금속노조는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조합원의 괴리감을 뛰어 넘어 기아차내의 6000여 명의 미조직 노동자를 하나로 묶고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금속노조 내의 차별철폐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모범적 사례"라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9일 있었던 기아차지부의 임시대의원대회 결과는 이 같은 '환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앞서 1일과 2일 열렸던 임시대대에서도 조직통합에 대한 논란으로 대대가 휴회된 바 있었을 정도로 기아차지부 내에서 집행부의 결정에 대한 찬반은 팽팽했다.
논의 과정에서 지부 내 새로이 비정규직지회를 만드는 데 따른 각종 문제제기도 쏟아졌고 일부 대의원들은 조합원 찬반투표로 조직통합을 결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은 '통합 거부'로 결론이 난 것. 지부는 11월 말 경 열릴 예정인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사1조직 방안을 다시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과 관련해 "현장 조합원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이고 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잔업, 특근 못한 불만 쌓인 듯"…부결 원인 분석이 더 '우려'
특히 현장 조합원들의 '싸늘한' 시선의 원인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이기주의'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갖고 있는 잔업과 특근에 대한 요구가 있는데 비정규직들의 파업으로 라인 자체가 멈춰버리면서 현장에서 불만이 누적된 것이 원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은 결국 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임금 및 수당 요구가 비정규직에 의해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실제 지난 8월 있었던 비정규직지회의 파업 과정에서는 화성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지회의 한 조합원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정규직노조가 임단협 파업을 할 때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로 라인이 멈춰 임금 자체를 못 받는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책임 못 질거면 차라리…" 다른 대공장에도 '부정적 효과' 예상
정규직지부와의 통합을 전제로 임단협 쟁의행위를 중단했던 비정규직지회는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조직통합을 전제로 임단투를 중단했던 비정규직지회는 향후 계획을 논의 중이다.
기아차의 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정규직노조가 조직통합을 거부하면 원청은 고사하고 하청업체들도 임단협에 불성실하게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난 8월 31일 9일 동안의 파업을 중단한 이후 기아차지부가 원청의 교섭 참가를 요구했지만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통합하자고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번 결정으로 책임을 못 질 거라면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더욱이 이번 사례는 현대차, GM대우 등 다른 대공장에까지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원칙을 처음으로 실현하려했던 첫 사례가 집행부가 아닌 오히려 현장의 벽에 부딪혀 좌절됐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이정희 교육선전실장은 "다른 곳에 비해 집행부가 조직통합에 정성을 들였던 곳인데 대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됐다"며 "역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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