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앞서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때문인지 게스트들의 레드 카펫 입장이 예정보다 굼뜨게 진행되는 듯 했다. 현지 방송국의 개막식 생중계에 출연하고 있던 나는, 물경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레드 카펫 쇼를 보며, 누가 누군지 분간조차 안되는 상황에서 애를 먹어야 했다. 이태성을 비(정지훈)라고 소개했다가, 틀렸다는 걸 알고는 급히 "비가 와서 비인줄 알았습니다."라면서 얼버무리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레드카펫 쇼가 본격 도입된 뒤부터 확실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꽤 '뽀다구'가 난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배우들이 가슴팍이든 등이든 푹 파인 드레스를 입거나 쫙 빠진 턱시도를 걸치고 빨간 융단을 밟고 오면,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것은, 영화제 개막식이고, 그 개막식의 레드카펫인데 영화제와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연예인들까지도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칸영화제 공식시사 행사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레드카펫 쇼가, 오로지 배우들의 패션 품평을 위한 기회로 소비되고 있다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아카데미 영화상조차 시상식과 관련된 배우들이 레드 카펫 위에 서고 조명을 받는다. 영화제 개막식 행사가 이렇다할 출품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배우들의 건재를 알리기 위해 숟가락 하나씩 올려 놓는 자리여서야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걸 내년에도 그냥 가지고 간다면, 영화제 역시 저잣거리의 흥행 논리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이른바 스타들의 이름값을 착취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제다. 평소 박스오피스의 척박한 논리에 가려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배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자리다. 레드 카펫의 영광은 바로 그들 배우에게 헌사해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일까? 설령 카메라 플래시가 조금 덜 터지면 어떤가. 설령 팬들의 환호성 소리가 조금 낮아진들 어떤가. 그 착시의 미장센을 위해 영화제 정체성을 훼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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