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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비평가에서 영화산업의 인사이더로

[뉴스메이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이상용

요즘 같은 시대에 이상용 같은 인물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면 짜증이 난다. 간단한 약력을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쳐보라. 이상용에 대한 정보는 뜨지 않고 이상용 이 인간이 쓴 글만 줄줄이 뜬다. 헹 그래도 포털은 좀 나은 편이다. 특정 영화 전문 사이트를 들어가 보라. 거기서 이상용을 치면 그가 쓴 글이 페이지를 훌쩍훌쩍 몇 페이지를 넘어가며 나온다. 아 내가 찾는 글은 이상용이 쓴 것이 아니라 이상용을 쓴 글이라니까. 그러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셈이다. 이상용은 여전히 쓰는 사람이다. 영화를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글쟁이다. 글쟁이가 글쟁이를 인터뷰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 사무실에 있는 그의 책상에는, 비교적 매우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무더기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영화제 프로그래머 책상의 풍경과 다른 그것은 이 이상용이란 인물이 갖고 있는 지적 탐구욕을 드러내는 대목이어서 흥미롭다. 그렇게 꽂혀있는 책 가운데 영화관련 책들은 그리 많이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살만 루시디의 소설이 눈에 띈다. 아마도 집에 있는 서가에는 소설과 인문학 서적들이 가득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이상용

보기에도 창백한 지식인 모습의 이상용은 실제로도 창백하게 지금의 영화판과 세상사의 고민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고민하는 30대의 청장년이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남들이라면 넙죽 받았을 것을 이 사람, 꽤나 고민했을 사실에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 그랬을까. 그건 요즘의 그를 만나 가볍게 술을 마셔보면 금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상용은 그리 술이 세지 않아서 소주 세 잔에 소맥 폭탄 한 잔이면 불쾌해진 얼굴, 심란해진 그의 마음을 잡아 낼 수 있다. 그럴 때 그의 입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선배라는 표현보다는 형이란 표현이 나온다. "요즘 고민이요... 그렇죠. 고민이 돼요. 이게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었던가. 이게 맞는 길인가.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카데미는 죽었다. 여기엔 진정한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갈 길은 엄혹한 현장 비평가라구요. 남들이 다 가시밭길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해도 현장에 두발을 딛고 까칠한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 그러한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건 양립할 수 있는 대목이지 대립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이 안에 들어오고 나서 국내 영화산업의 내밀한 갈등 같은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또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작사와 투자사, 프로듀서와 감독의 입장과 태도들이 예전에 한 묶음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각각의 문제가 고스란히 다 들어옵니다. 그런 걸 알게 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몰랐어야 되는 문제,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하는 거죠."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이게 무슨 흰소린가 하는 느낌이다. 조금 생각해서 듣는다 해도 이 인간 도통 세상이 움직이는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닌가 하는 부아가 치민다. 하긴 말은 맞다.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다 알게 되고, 그걸 넘어서 이해까지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들 모두의 사정을 다 들어주게 되는 처지가 되면 그 순간부터 현장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은 조금씩 마모되기 십상이다. 세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정치 쪽으로 간다. 세상과 원칙을 가지고 등지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저널리스트의 길을 간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 세상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비판의 각을 세울 때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쉽지 않은 문제다. 술 몇 잔에 할랑할랑 혀 돌아가는 소리로 그가 해대는 소리가 때론 황당하고 짜증이 나긴 해도 그의 고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지식인이라면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고민이 아닌가 싶다. 깡마른 체구와 얼굴에 비해 약간 큰 입 덕분에 늘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색무취의 처세술을 갖고있을 법하지만 그는 이렇게 자신 안에 늘 고민의 소용돌이를 안고 산다. 지금껏 그가 해낸 수많은 비평이, 때론 날선 혹평일지라도, 그 당사자에게조차 신뢰감을 얻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이상용

프로그래밍을 맡은 지 올해가 첫해인 만큼 그는 이번 작업에 자신만의 색깔을 많이 담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전체 편수를 맞추고 프로그래밍의 예년 기조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립영화 쪽으로는 조금, 아니 상당히 욕심을 낸 흔적이 다분하다. 곧 출간될 책이 <독립영화의 고고학>일 만큼 이 분야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온 이상용은 윤성호나 안슬기 감독 같은 독립 장편영화 감독을 뉴 커런츠 부문에 입성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가 노력한 만큼 이번 영화제는 지난 한해 진행된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을 비교적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배치했다. 아마도 이번은 이 정도지만 다음 해부터는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부문이 외관으로부터 크게 달라질 공산이 크다. 이 부분에 대해 이상용도 말투를 한번 꺾고 간다. 그래야 할 것이다.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 이상용이 된 것부터 파격이라면 파격이었으니까 그렇게 겉모습부터라도 확 바뀌어야 할 것이다. 부산영화제가 한국영화 담당자로 30대 중반을 선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대는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2대는 허문영 현 부산시네마테크 원장이 맡았었다. 두 사람은 각각 50대와 40대였다. 그만큼 부산영화제 스스로 앞으로는 영화제가 달라진 영화세대를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선보인 셈이다. 비평가로서 이상용의 멘토는 재미있게도, 기성 비평가들이 아니다. 누구를 모델로 했냐는 질문에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투덜투덜. 그래도 이용관, 정성일, 김영진 같은 이름이 거론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로부터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진정한 멘토는 문학평론가였던 故 김현 씨다. 어릴 적 문학 소년이었던 이상용은 우연히 집어 든 김현 평론집을 보고 나서 "시보다 평론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영화평론가가 된 것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평론의 세계는 영화와 책을 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영화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평론가로서 그가 품고있는 욕심이다. "인문학에 대한 인식과 욕망, 그 지식의 축적이 충분치 않고서는 올바른 영화평론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갑자기 다치바나 다카시가 떠오른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현대 지식인 사회의 진짜 문제는, 모두들 스페셜리스트만 키우는데 급급해 정작 세상의 운행 법칙을 꿰뚫을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는 다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다카시는 그래서 그런 책을 썼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이상용은 나중에 이런 책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평론가들은 다 바보가 되었는가". 과연 그가 그런 글을 쓸지 안 쓸지는 모르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와 특히 한국영화 부문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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