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이면 국제무대에 데뷔한지 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공연을 했지만 일본에서도 뉴욕만큼 많은 공연을 했습니다. 도쿄에서만도 50회 넘게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재일교포의 애환을 그린 영화 <박치기2>의 OST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박치기, 임진강, 이봉우 그리고 재일교포
임형주와 재일교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임형주는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세계 거의 모든 명곡들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몰랐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임진강'은 휴전선을 가르는 북쪽에 사는 사람이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물새들을 보며 남쪽의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의 애잔한 선율의 곡으로 냉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금지곡이었다.
임형주가 재일교포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영화 <박치기2>의 '임진강'이었다면, 본격적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박치기2>의 제작자 씨네콰논의 이봉우 대표였다. 이 대표는 재일교포 3세이다. 임형주는 "일본에서 수십 회 공연을 하면서도 일본 측 공연·음반 관계자들을 만나는게 고작이었는데, 이봉우 대표를 만나면서 재일교포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치기2> 음악 작업을 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박치기1> DVD를 사서 봤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에서 중등교육까지 받는 동안 재일교포의 역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왜 일본에 가게 됐는지, 일본에 간 이후에는 어떤 차별을 받고 살아야 했는지,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는 일본 정부가 재일교포들에 대해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임형주는 '교포'와 '동포'의 의미를 정확히 구분할 정도로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이 깊은 것 같았다. '동포'는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고, '교포'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를 뜻하는 거주 개념의 말이다.
"한류열풍으로 일본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진 것 같습니다. 한류열풍이 불기 전에 일본에 진출한 저도 그 덕을 좀 봤습니다.(웃음) 그리고 우리 교포 분들도 한류열풍의 덕을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류스타들이 일본에서 활동할 때 너무 일본인들만을 의식하고 활동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일본에는 엄연히 수많은 우리 교포들이 살고 있는데 말이죠."
이렇게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을 통해 교포 사회와 교포의 정체성 등에 대해 이해를 갖추게 된 임형주는 방송에서 우토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즉각적으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형주는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사회봉사활동 차원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음악'이기 때문에 우토로 주민들을 위한 콘서트가 열리면 반드시 참석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TV에서 우토로 마을을 봤는데, 많은 어르신들이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날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도 재일교포들의 아픔과 한에 무관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토로 주민들을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그들이 그 곳에 정착하게 된 데에는 일본 정부의 역사적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납니다."
우토로 마지막 토지협상…관건은 토지매입비 마련
현재 우토로 마을은 토지소유주인 서일본식산 측과 마지막 토지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서일본식산 측이 우토로 6400여 평의 땅 값으로 시세의 두 배인 14억 엔(약 112억 원)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아름다운재단에서는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5억여 원을 모금한데 이어 각종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우토로의 사정이 누리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며 2년 만에 다시 모금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우토로 마을 지원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우토로 마을의 재일교포들이 50여년 간 겪어온 차별과 토지 분쟁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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