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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개발이 '물폭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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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개발이 '물폭탄' 키웠다"

태풍 '나리' 제주 강타…하천 복개도로 주변 '융단폭격' 맞아

제11호 태풍 '나리(NARI)'가 제주를 강타한 뒤 첫 날이 밝은 17일 오전 맑게 개인 가을 하늘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피해 상황을 목격한 도민들은 충격적인 피해 규모에 말을 잊지 못했다.
  
  시간 당 100㎜ 안팎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제주시내는 온통 강풍에 날리고 급류에 떠내려온 '잔해'로 뒤덮인 채 복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범람 피해가 가장 심했던 제주시 용담동 한천 복개도로 주변은 '융단폭격'을 맞은 듯 했다.
  
  복개도로가 시작된 한천교 다리 상판 중앙 부분이 수압에 20㎝ 가량 솟아오르며 균열이 생겨 왕복 4차선 도로가 전면 통제됐고, 중장비를 동원한 복구작업에 하류쪽 교차로와 용연교 다리까지 통제되면서 주변의 좁은 우회도로로 차량이 몰려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있었다.
  
  복개도로 주변 인도와 골목, 하천 하류쪽에는 급류에 밀려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차량 수십대가 각종 '잔해'와 범벅이 된 채 계속 방치돼 자연의 위력을 말없이 보여주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을 꾸짖는 듯 했다.
  
  복개도로 주변 주택과 상가에서는 일상 업무를 중단한 채 소방차를 동원한 가운데 배수작업과 진흙에 범벅이 된 가재도구, 상품들을 정리하는 손길로 바빴다.
  
  급류가 빠져 조용해진 한천 하류 용진교 교각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해진 승용차 2대가 걸려 있었고, 난간이 파손된 다리 위에도 범람한 다리를 건너다 멈춘 차량과 인도 블록, 통나무, 돌덩이 등으로 범벅돼 있었다.
  
  용진교 주변 안벽은 곳곳이 심하게 무너져 있었고, 급류에 유실된 하천 동쪽 보행로에는 승용차 1대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한천 주변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김현수(45)씨는 "한천이 범람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모든 도로가 강으로 변해 둥둥 떠내려가는 차량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재발이 예상되는 재해인 만큼 철저한 원인 분석과 대비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지천 범람으로 뻘바다를 이룬 제주시 동문재래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철야로 점포를 정리했으나 이틀째인 17일에도 전체 분위기는 계속 '뻘바다' 그 자체로 남아있었다.
  
  공무원 등 복구지원반이 중장비와 함께 투입돼 진흙 제거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가슴 높이까지 차오르며 범람했던 급류가 남기고 간 진흙은 치워도 치워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상가를 받치고 있는 산지천 복개부지 아래 교각에는 통째로 뽑혀 떠내려온 나무와 잔해들이 수북이 걸려 물의 흐름을 차단했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문시장에서 25년 동안 장사를 해온 정일중(68)씨는 "20여년 전 복개할 때 중앙 교각을 없애고 병목현상도 줄이도록 건의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공사 편의 만을 생각해 설치한 교각이 범람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한천, 산지천, 병문천 등의 범람 피해가 집중됐던 곳은 모두 공교롭게도 복개부지 주변이었다.
  
  비교적 폭이 좁은 한천 복개부지 상류인 한천교 다리의 교각은 2개, 병문천 하류 교각은 무려 5개나 됐다. 토목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얼마든지 교각을 없애거나 대폭 줄여 물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었던 상황으로 판단됐다.
  
  그래서 복개부지 주면 주민들은 한결같이 "악천후를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은 설계"라고 지적했다.
  
  인명피해와 대규모 농경지 침수도 자연스런 물흐름을 차단한 도로나 복개부지, 다리, 등의 상류나 시설물에 막혀 범람한 급류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자연재해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인재(人災)'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태풍이 제주에 직격탄을 날린 16일 오후 1시 50분께 한천 복개부지 상류에서 대피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소모(39)씨 가족들은 "복개부지에 막혀 역류된 물줄기가 범람하면서 사고를 당했다"며 무분별한 개발을 원망했다.
  
  태풍의 길목인 제주에서 앞으로라도 '이상기후'에 따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보다 철저한 재해예방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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