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토론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활동하는 주제와 관련된 토론회 소식을 접하면 늘 고민에 빠진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참석한 토론회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마치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참석여부를 결정하곤 한다.
그러면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열에 한번은 머리와 마음을 짠하게 울리는 경우가 있는 까닭에 아직도 그런 자리가 있다고 하면 종종 힐끔거리게 된다. 후훗, 사람들도 이래서 도박을 쉽게 끊지 못하는 거겠지.
나는 위기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기'를 화두로 하는 자리치고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위기를 밖에서 논평하기. 위기의 당사자가 장황하게 자기변명 늘어놓기.
이런 내가 사회운동포럼을 함께 준비하게 된 사연? 간단하다. 인터넷에서 포럼을 제안하는 박래군 씨의 글이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몸담았던 실천들을 진솔하게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진단하고 나서 뭔가 함께 돌파해보자고 던지는 그 제안은 순도가 참으로 높아보였다. 적어도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논평하는 자리는 아니겠구나, 결국 말미에 자기변명으로 끝나는 그런 허탈한 자리는 아니겠구나 싶어서….
'새로운'? '양식'?
나는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이라는 열쇠말을 함께 풀어가는 기획단에 참여했다. 민주주의, 집회, 언어,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이야기 꺼리를 잡았다. 기획단 첫 모임에서도 그랬고 본 포럼에서도 '새로운'이라는 단어부터 각자 생각의 간격이 드러났다.
기성의 모든 것이 낡았다는 뜻이 아니라, 소통/연대/변혁의 발목을 끈끈하게 잡아매고 있는 걸림돌을 걷어내자는 의미에서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그 걸림돌의 구체적인 모습이 민주주의, 집회, 언어,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이야기 거리들이다.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걸림돌을 꼭꼭 찍어 바꿔내자는 것이 기획의도랄까.
그렇지만 아쉽게도 '양식'이라는 표현 역시 적잖은 오해를 낳았다.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운동의 과정이 일치해야한다는 고민 속에 사용한 단어인데, 양식은 스타일, 형식 등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과정이 가치를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우리 기획단은 운동 가치를 거스르고 있는 현재의 운동 과정을 따로 떼어내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열어보겠다는 사회운동이 내는 목소리에 이런 답이 종종 돌아오기도 한다. '너희가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운동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어렵다, 쉽다의 난이도 문제를 넘어 이제는 거의 외계어 수준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담아내지 않은 껍데기 언어로는 타인에게 어떤 울림도 전달할 수 없다. 언어라는 소통의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놓고 운동을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민주주의로 넘어가보자. 사회를 향해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운동사회 안에서도 민주주의의 원리를 거스르는 일을 종종 만나게 된다. 추구하는 가치를 운동사회 스스로가 저버린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페미니즘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띤다.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변혁에 대한 열망을 분출시키는 공간이 되어야할 집회도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를 회의하게 되고, 가슴에 품었던 열망은 관성적인 집회를 통해 싸늘하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다루는 내용이 넓어서 본 포럼 때는 거의 소개되지 못했지만, 준비과정에서는 사례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것. 이 작업을 통해 각자 발 딛고 있는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도 그에 따른 처방과 대안도 다양할 수 있다는 점, 여러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안적 실험들이 좀 더 알려질 필요가 있겠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연대의 공간에서 각자 처한 조건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여전히 잘 풀리지 않는 숙제도 남겼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정말 큰 숙제다.)
포럼 준비과정과 본 발표의 자세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조하라는 안내로 대신한다. 어차피 그동안 오갔던 만만치 않은 내용을 짧은 지면에 압축적으로 담아낼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기획단이 모아낸 고민을 포럼이라는 열린 장에 던지고 참가자와 함께 소통하겠다고 하는 순진한(?) 접근은 사실 거의 실패로 끝났다. 뭔가 쌈박한 분석과 대안을 좀 내달라는 참가자들의 바램. 애초에 지리멸렬한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는 기획단의 생각. 결국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한 것이 한계겠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사회운동포럼이 본행사와 선언문으로 갈무리되는 행사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처음 이 포럼을 제안했던 뜨거운 진심과 정신이 현장에서 그 생명력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이 던졌던 화두들은 강의동을 꽉꽉 채웠던 그 열기를 자산으로 활동공간에서 역동적으로 실험되고 실천되었으면 한다.
한 포럼 참가자의 말처럼, 이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이랜드 투쟁 같은 구체적인 현실공간에서 한번 구현해보자. 신자유주의에 민중들이 함께 맞선다는 운동의 가치 하나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여러 걸림돌을 여전히 만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집회, 민주주의, 언어, 교육, 페미니즘이라는 날개를 달고 걸림돌을 사뿐사뿐 넘어보는 건 어떨까.
열쇠말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과 관련한 자료는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의 기획단게시판 가운데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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