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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영화들을 어떻게 보라고?!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거친 말로 시작해서 좀 뭣한 감이 있지만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최근 주말마다 개봉되고 있는 영화 편수를 보고나면 다들 똑같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한주에 10편씩, 심지어 13편씩이나 영화를 개봉하면 뭘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많은 숫자가 쓸데없는, 고만고만한 영화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들 면면을 좀 보면 그걸 잘 알 수가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10대 버전으로 옮겨놓았다는, 그래서인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입소문이 짱짱한, <디스터비아>를 비롯해서 FBI내 제5열의 이야기를 그린 <브리치>도 있고,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긴 어렵겠으나 감독의 이름값만으로는 충분히 주목을 끌만한 퀜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까지 화제작들이 수두룩하다. 50대 아저씨들이 바이크를 몰고 다니며 난장을 치는 존 트라볼타 주연의 <거친 녀석들>은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 한켠에서 쥐죽은 듯 개봉돼 핑퐁(교차) 상영될 만큼 가볍게 취급받을 작품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공룡시대 화석을 보는 것 같다 하더라도 그래도 케빈 코스트너고, 그래도 데미 무어인데 이 두사람이 주연을 맡은 <미스터 브룩스>도 영화 '더미'속에 파묻혀 개봉이 됐는지 안됐는지조차 분간이 안될 것이 뻔하다. 캐서린 제타 존스의 요리 이야기 <사랑의 레시피>는 그래도 로맨스물인 만큼 여성관객들로부터 약간의 눈길을 끌까, 한 열혈 여성 신문기자가 살인마 광고회사 사장의 뒤를 캐는 스릴러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같은 작품은 듣도보도 못한 영화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거, 당신은 허구헌날 할리우드 영화만 걱정하느냐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쓰다보니 할리우드 작품 제목만 나열하게 됐는데 한국영화의 신세도 마찬가지다. 민병훈 감독의 <괜찮아 울지마>를 사람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도무지 어느 극장에 붙었는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던 한승룡 감독의 <오프 로드>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길가(road)에서 이미 벗어나(off) 있을 것이다. 영화가 영 아니어서? 영화가 아닌지 아니지 않은지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기회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 무슨 황당변괴,날벼락 같은 얘기인가. 언제까지 한국 극장가, 영화판은 상영문화의 다양성 논란을 거듭해야 하는 것인가. 다양한 영화들이 고루 상영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어디 한국영화뿐이겠는가.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 소리를 듣는 최고 지성의 코미디 감독 겸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신작 <호랑이와 눈>같은 작품도 변변한 대접을 받지 못한 공산이 크다. 애인을 좇아 가다 보니 이라크까지 가게 된 한 착한 남자의 좌충우돌 전장 경험담이다. 그의 전작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무거운 얘기를 무겁지 않게 끌어가는 그의 놀라운 문명비평의 목소리가 한가득 쏟아진 영화더미 속에 깊숙히 묻혀버릴 것이다. 안타까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호랑이와 눈 ⓒ프레시안무비
할리우드 영화들 걱정 그만하라는 소리에도 얼마든지 맞받아칠 얘기가 많다. 이들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는 이미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국내 영화'들이 많다. 직배사 작품이 아니라 국내 영화사가 수입한 영화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입을 해서, 이렇게 몰아치기식 반짝 개봉에 그치는 일이 빈번해지면 모두들 도산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부가판권 시장이라도 올바르게 작동해서 그쪽에서라도 '밑진 것'을 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 시장 또한 풍비박산난지 오래다. 그러니 결국 이런 영화들이 줄줄이 쏘시지처럼 개봉돼 사라지면 그만큼 국내 영화산업의 토대도 흔들흔들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모두가 고루 살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된다. 하지만 이번 주 개봉상황만 보면 모두들 공멸의 길을 택하는 것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상황일진대 한켠에서는 <화려한 휴가>와 <디워>의 흥행 붐으로 한국영화시장이 부활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단기간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이 아닐 수 없다. 새로 개봉한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부디 공정한 대우를 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드는 건 그때문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최근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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