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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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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
  
  -경제개혁리포트에서 지적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다시 확인
  -공정위의 글로비스 심결, 물량몰아주기에 대한 첫 제동, 환영
  -피해회복과 글로비스 부당이득 반환 않으면 법적조치 착수할 것
  
  오늘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이재홍 수석 부장판사)는 계열사 임원과 공모하여 약 1,034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그중 696억 원을 횡령하고, 자신의 개인보증 채무를 회피하고 정의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정몽구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항소심 법원의 이번 판결이 지배주주나 전문경영인의 범죄행위에 대해 징벌적 효과가 거의 없는 집행유예 선고를 되풀이함으로써 결국 '반기업적·반시장적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사법적 규율 기능을 사실상 방기하는 기존의 관행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어떠한 수사(修辭)를 동원하여 합리화했든 간에, 이번 집행유예 선고는 실제로는 정몽구 회장의 재력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법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요약되는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항변할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할 것이다.
  
  법원이 밝힌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사유는,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8월 28일 발표한 경제개혁리포트 2007-10호「우리나라 법원의 화이트칼라 범죄 판결의 양형 사유 분석」에서 적시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경제범죄의 동기나 사회적 파급효과보다는, 당해 범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의 (협의의 금전적) 손해만 전보되면 당해 범죄의 불법성이 낮아져 처벌의 필요성도 줄어든다는, 전형적인 형벌에 대한 응보론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재벌 총수일가의 범죄동기가 그룹 지배권의 유지·승계라는 유·무형의 사적 편익에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며, 설사 범죄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자신의 재력을 이용하여 사후적으로 (협의의) 회사 피해액만 변제하면 실형을 피할 수 있고 나아가 지배권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는 올해 초 부터 일관되게 현대자동차그룹 측에 ▲ 집중투표제 및 내부거래위원회 신설 등의 지배구조 개선, ▲ 글로비스, 본텍 등 회사기회 유용 문제의 해결, ▲ 비자금 조성과 배임 행위를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인사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 등의 3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촉구하였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러한 요구는 뒷전으로 한 채 그룹의 모든 역량을 오로지 총수의 집행유예 선고에만 집중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선택이 사회적으로나 그룹 자체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또 다시 잘못된 판결 관행을 반복함으로써 현대자동차는 물론 여타 다른 재벌에게까지 '총수의 안위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왜곡된 유인구조(incentive)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번 집행유예 선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지난 7월 20일 농협중앙회 사옥 매각과 관련해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 원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정대근 농협회장의 경우와도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현대자동차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농협 정대근 회장은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현대자동차 김동진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양형의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정몽구 회장에 대해 무리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려다보니 전문경영인인 김동진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이 역시 전술한 경제개혁리포트 제10호에서 지적한 이른바 '전문경영인 항변'에 의한 집행유예 선고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항소심 판결은 재벌 총수일가와 전문경영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한국 사회의 형사법적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형사 규율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감독당국의 행정 규율, 나아가 피해당사자에 의한 민사적 규율이 더욱 엄격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공정위는 오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이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한 부당지원행위 및 현저한 규모의 유리한 거래를 통한 부당지원행위를 한 것에 대하여 과징금 631억원을 부과하였다
  
  특히 공정위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물량몰아주기를 통한 글로비스 부당지원행위에 대해 과징금 9,627백만원(2001.3 이후 2004.6까지 지원성 거래규모 484,440백만원, 지원금액 48,144백만원)을 부과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공정가격과의 가격 차이가 통상적인 부당지원행위 요건(현행 부당지원행위심사지침 상 '가격의 현저성' 기준은 10%임)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계속거래에 기반한 '현저한 규모'의 물량몰아주기를 통해 과다한 경제상 이익이 제공되었을 경우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결정에서 공정위는, 지원주체의 물류비에서 차지하는 비중, 화물운송주선업 시장의 1위 사업자와 비교한 크기, 화물운송주선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크기, 글로비스의 전체 매출액에서 계열사거래가 차지하는 비중 등의 기준을 제시하여, 공정거래법 시행령 [별표 1] 제10호에서 규정한 현저한 규모의 거래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밝힘으로써, 향후 물량몰아주기를 통한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규율의 길을 열었다.
  
  통상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가 성립하려면, '거래의 부당성' 및 '경쟁 제한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번 공정위 결정은, '현저한 가격'만이 아니라 '현저한 규모'도 거래의 부당성 요건에 포함됨을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이른바 물량몰아주기로 대규모기업집단 계열사와 독립기업간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한 것이다.
  
  이는 대중소기업간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에도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근 SI업체(시스템 통합업체) 등에서 물량몰아주기가 재벌들의 새로운 부와 경영권의 승계수단으로 만연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공정위가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07년 5월 22일자 경제개혁리포트 2007-5호 「왜 재벌총수일가는 IT회사를 선호하는가」참고)
  
  또한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지난 2006년 4월 11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경제개혁연대의 전신)가 정몽구 회장 및 정의선 사장 등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의 전현직 대표이사 5명을 특경가법상 배임혐의로 고발한 사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거래내용, 전체 매출총이익률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글로비스와 거래함으로써 글로비스에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이 공정위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상 검찰은 조속히 수사를 마무리하여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글로비스를 통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이 취한 부당이득은 원래 현대자동차 등의 계열사와 그 주주들에게 귀속되었어야 할 이득이다. 글로비스가 수행하고 있는 자동차 종합물류 사업은 현대자동차 등의 관련 계열사가 사업부 형태로 직접 수행하거나, 또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별도의 기업을 설립하는 경우에도 그 지분을 100%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 2월 50억원의 자본금으로 글로비스를 설립하면서 그 지분을 모두 정몽구 회장 부자가 취득함으로써 4년만에 현금수익과 평가차익으로 1조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전형적인 회사기회의 유용(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ies)에 해당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몽구 회장 부자가 글로비스·본텍 등을 통한 부당이득을 회사에 반환할 것은 재차 요구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밝힌 것처럼 공익재단 출연 등의 편법으로 이 문제를 우회하려고 한다면, 경제개혁연대는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적절한 법적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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