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을 맞이하는 느낌이 남다를 두 사람이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그룹 비리와 폭력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굴지의 재벌 총수 두 사람은 각각 6일과 11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몽구 회장 1심 실형, 2심은?
6일엔 정몽구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열린다. 초미의 관심사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정 회장에 대한 형량이 유지될 것인가 여부다.
정 회장 측은 나름대로 "횡령과 배임이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에 해가 되지 않았으며, 그룹 구조조정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항변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1조 원의 사회 환원'이라는 사회공헌 약속을 통해 실형만은 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정몽구 회장이 주축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수 세계 엑스포' 유치전을 강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혐의가 갈려진 1심에 비해 항소심에서는 실형이냐, 집행유예냐의 형량을 결정 짓게 되는 '양형 사유'에 대한 심리가 부쩍 눈에 띄었다. 재판부는 지난달 27일 열린 선고 전 마지막 공판인 '결심공판'에서 정 회장의 사회공헌 약속 의지를 묻는가 하면, 검찰과 변호인 측에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여론'에 대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측할 수 없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으로 대표되는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은 상태여서 정 회장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가 최근 2000년 1월~2007년 7월까지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된 기업 지배주주나 이사 등 149명의 1심과 항소심을 비교해 조사한 결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43명 중 58.5%인 24명이 집행유예로 형이 감형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제개혁연대는 "결론적으로 특경가법상 횡령, 배임죄로 기소된 149명 중 83.9%인 125명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셈"이라며 "특경가법상 횡령, 배임 죄는 법정형이 범죄 이득액이 5억~50억 원은 징역 3년 이상, 50억 원 이상은 징역 5년 이상으로 정해져 있을 만큼 중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징벌의 효과를 갖지 못하는 집행유예의 선고 비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집행유예 비율이 83.9%에 이른다는 것은 현재 한국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의 현실적 근거"라고 주장했다.
정 회장이 1심에서 선고 받은 '징역 3년'의 실형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1심은 나름대로 실형이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법정에서 인정된 정 회장의 횡령 등의 이득액이 50억 원을 넘는다고 봤을 때 재판부가 형량을 감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행유예의 기준이 징역 3년 이하의 형이어서,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의 변경 없이 집행유예를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 회장 봐주기의 수순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김승연 회장, 경찰조직 뒤흔든 책임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처한 현실도 낙관적이지 않다. 이례적으로 '화이트칼라 범죄'가 아닌 폭력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적 보복'에 나섰다는 점, 김 회장이 직접 폭행에 가담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충격적이었던 이 사건은 '그릇된 부정(父情)'이라는 측면에서 김 회장에 대한 동정 여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또 폭력 사건에서 중요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쌍방 폭력의 발생 여부 등을 따지고 볼 때 김 회장 측에 유리한 정황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 대한 각종 청탁과 로비의 의혹이 제기되고 고위 경찰 간부가 옷을 벗는 것은 물론 검찰에 구속된 데다, 그 후유증의 여진이 징계 갈등 등으로 아직도 계속 등 김 회장이 일으킨 사회적 피해를 감안할 때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법원 내부에서도 두 재벌 회장에 대한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느냐를 두고 관심이 높다"며 "여론에 밀려 재판부가 독립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론재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와, 과거 사회 지도층에게 유난히 관대했던 과거 판결의 예를 들어 형평성을 이유로 형량을 지나치게 낮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모두 있다"고 전했다.
9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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