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퀜틴 타란티노의 의미있는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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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퀜틴 타란티노의 의미있는 난장

[뷰포인트] <데쓰 프루프>

애초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이 두 편의 장편을 연출하고 중간에 일라이 로스, 로드리게즈, 롭 좀비, 에드가 라이트가 연출한 4편의 가짜 예고편이 삽입되어 총 191분짜리 대작으로 미국에 공개되었던 <그라인드 하우스>가 한국에서는 결국 깐느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인터내셔널 버전대로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로 나뉘어 각각 개봉하게 됐다. 따라서 <그라인드하우스>에 포함된 가짜 예고편의 경우,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것을 빼면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극장에서 확인할 길이 없게 됐다.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예고편은 그 일부가 <플래닛 테러>의 장면으로 삽입됐다.) 로드리게즈 감독의 <플래닛 테러>는 아직 개봉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가 먼저 9월 6일 극장 개봉을 맞게 됐다.
데쓰 프루프 ⓒ프레시안무비
싸구려 B급영화 두 편을 함께 틀던 이른바 동시상영관을 일컫는 말인 '그라인드하우스'가 원제였던 영화답게, <데쓰 프루프>는 저예산 B급 액션영화 장르와 그 장르를 둘러싼 문화 자체에 오마쥬를 바치는 일종의 메타-장르영화다. <데쓰 프루프>는 외견상 차를 이용한 연쇄살인마를 등장시킨 호러물이자 차량 액션 영화의 형태를 취하지만, 오히려 과거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을 비롯,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탐색하고 그 역사를 재구성하며, 이를 다시 자기 식으로 해석하며 논평을 가하는 영화다. 말하자면 타란티노는 <데쓰 프루프>를 통해 '영화로 영화 평론을 쓰는' 영화 평론가적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데, 언제나 B급 영화광임을 강조해오며 그런 영화들로부터 차용과 인용을 즐겨 해왔던 타란티노로서 그리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정도로까지 '영화에 대한 영화'로서 적극적으로 장르에 대한 논평을 가했던 영화는 <펄프 픽션>을 제외하면 <데쓰 프루프>가 가장 극단으로 나아간 경우라 할 수 있다.
데쓰 프루프 ⓒ프레시안무비
텍사스 주의 오스틴 시를 배경으로 한 전반부와 테네시 주의 레바논 시를 배경으로 한 후반부로 이루어진 구성은,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서로 완결성을 가진 영화 두 편을 느슨하게 이어붙였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영화 전반부 내내 화면에서 빛나는 몸매와 섹시한 자태를 뽐내던 아름다운 미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는 애초에 이 영화가 <그라인드 하우스>의 일부로서, 두 감독의 두 영화를 이어붙인 영화의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단순히 배경의 차이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오히려 반격을 당하고 죽음을 맞는가의 차이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전반부는 과거 장르 영화들의 문법과 클리셰를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고, 후반부는 이를 통한 '해석'과 '응용'을 하고 있는,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다. 이를 이어주는 것은 차량을 이용해 연쇄살인을 거듭하는 연쇄살인마 '스턴트맨 마이크'의 존재뿐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의 개연성은 별로 상관하지 않은 채 섹시한 미녀의 노출과 화끈한 액션 등 한 마디로 섹스와 폭력의 볼거리를 주요 목표로 제작되었던 B급 액션영화의 장르문법을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조잡한 데다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앵글과 씬들, 편집 시 당연히 버려졌어야 할 NG 컷들이 그대로 삽입돼 있는 장면, 잦은 상영으로 훼손된 낡은 필름 특유의 비 내리는 화면과 툭툭 끊기는 화면(아마도 영사기사가 영사기에 걸기 위해 필름을 잘랐다가 잘못 붙인 듯한 상황을 암시하는) 등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은,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들 자체와 그 영화들이 상영되던 당시 극장 안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들이다. 여자들은 일정한 직업도 없고 그저 남자들과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이며, 스턴트맨 마이크의 캐릭터 역시 영화에서 곧잘 보이는 '폼 잡는 마초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은 여배우들의 가슴과 다리선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훑어대는 카메라 역시 남성적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를 전시한다기보다는, 그런 목적으로 제작되었던 과거 영화들의 씬들을 흉내내고 재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들을 벗겨먹는 여자들에게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이쪽 장르 영화의 문법대로 전반부의 여자들은 모두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이 전반부는, 연쇄살인마와 미녀 간 괴상한 방식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성의 국부를 은유하는 '숲'에 관한 시를 읊는 남자와 그 앞에서 섹시한 랩 댄스를 추는 여자의 씬은 정사 장면과 별 다를 바 없다.
데쓰 프루프 ⓒ프레시안무비
이제 영화가 레바논으로 배경을 옮겨가면, 여기에서는 보다 '현대 영화적인' 특징들이 반복된다. 처음 후반부의 미녀들이 소개되는 편의점 앞 씬에서 화면은 일정 시간 흑백으로 갔다가 다시 컬러로 돌아오는데, 바로 이 컬러로 돌아오는 지점이 '과거 영화의 재현'이 아닌 그 영화들을 자양분 삼아 '바로 자신의 현대적인'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부터는 의도적인 조잡한 앵글이나 상태 나쁜 필름 상태 따위가 재현되지 않는다. 타란티노가 직접 촬영을 담당한 화면은 매끈하고 세련되기 짝이 없으며, 카체이스 씬은 역사상 최고의 카체이스 씬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박력있고 스릴이 넘친다. 여자들 역시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모두 '영화판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역시 매우 의미심장하게 이 영화의 메타-영화적 특징을 강조해주는 설정이다. 이들은 일에 대해서든 사랑에 대해서든 훨씬 현실성이 있는 현대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후반부의 이 여성들만큼 생동감 넘치며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영화들도 찾기 드물 정도다. 또한 후반부에서의 스턴트맨 마이크 역시 영화 속에서 종종 그려진 정형화된 마초 캐릭터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반부의 스턴트맨 마이크는 우리가 일상에서 혹은 온라인에서 노상 접하는, 큰 소리는 치지만 실제로 별 거 없는 찌질한 현대 남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깨를 스친 총알 한 방에 그토록 경망스럽게 고통을 호소하는 '마초 캐릭터'가 과연 이전 영화에 얼마나 등장했던가? 관객들의 웃음을 뽑아내는 점도 바로 이렇게 과거 장르 문법을 정반대로 뒤집는 장면들에서다.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후반부의 여자들은 스턴트맨 마이크를 통쾌하게 혼내줄 뿐 아니라, 자동차 광인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로사리오 도슨의 캐릭터가 그 긴 다리를 쭉 뻗어 후반부 초반 자신의 발을 간질였던 바로 그 마초의 고개에 그대로 내리꽂음으로서 악당 처치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영화에서도 직접 언급되는 <더티 메리와 크레이지 래리>, <배니싱 포인트>, <식스티 세컨즈> 등을 포함한 무수한 B급 액션영화들뿐만 아니라 당시 기존의 영화문법을 살짝 비틀었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 특히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전면에 등장한 미녀들이 흑인이거나 혼혈 등의 유색인종 여성이란 점에서)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 중에서도 여성 영웅이 활약하는 영화들이 타란티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영화사 책에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1910년대 시리얼 무비(Serial Movie, 일명 '연작 영화')의 영향 역시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상업성만을 염두에 둔 저예산 액션영화들과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 모두에게 공히 영향을 준, 일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시리얼 무비는 영화의 초기 시대에 섹스와 폭력을 코드로 상업성을 위해 짧은 기간 내에 저예산으로 마구 제작되던 액션 무성영화들이며, 여성 영웅들이 적극적으로 활약하는 영화들이다. 하나당 짧은 러닝타임으로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이 영화들의 영향이 <데쓰 프루프>에서 감지되는 것은, 아마도 영화광인 그가 당연히 이 시리얼 무비 역시 챙겨보며 그 영향을 자신의 영화 속에 슬쩍 끼워넣었거나, 저예산 액션영화들의 본질을 추구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 원류까지 거슬러 올라갔거나일 것이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데쓰 프루프>는 1910년대부터 고상하고 우아한 영화들 이면에 존재했던 섹스와 폭력의 저예산 오락영화들의 역사와 본질과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재현하며 해석하는, 영화에 관한 영화이자 영화사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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