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이었다. 송파구청, 성신여고, 서울대 보라매 병원, 언주초등학교에서 각각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해고된 4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29일 서울시 중구 무교동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올해 갑작스레 직장에서 해고됐다. 그 이유에 대해 이들은 지난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은 해고 철회 및 비정규직법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농성을 시작하며 "이랜드 사태에서 드러났듯 비정규직법에 의한 해고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경찰력 투입이 정부의 유일한 대책이었다"라며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파구청 "비정규직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농성을 시작한 4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곳은 다 달랐지만 모두 공공기관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5년부터 1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한 곳에서 일해 왔다.
송파구청 민원봉사과에서 5년 동안 전화안내 업무를 맡아오다 올 여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임정재 씨는 "구청으로부터 비정규직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송파구청은 195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35명을 6월 30일자로 계약해지했다. 정부가 모범을 보이겠다며 내 놓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은 1명 뿐이었다.
12년 일한 학교를 떠나며, '자살'을 결심했다
성신여고도 행정실에서 12년을 일해 온 정수운 씨에게 "비정규직법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저항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난 다른 3명의 동료들과 달리 수운 씨는 "해고 사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며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이나 싸웠지만 학교는 꿈쩍하지 않았다. 수운 씨는 지난 6월 22일 자살 시도까지 했다.
"24개월 고용하면 무기계약 전환"…"23개월째 일한 노동자는 나가라"
보라매서울대병원 영양실에서 일해 온 김은희 씨는 올해 말까지였던 계약기간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병원이 '1개월 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이어 계약기간이 끝나자 바로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 왔다.
비록 법시행 이후 체결된 계약부터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고용하면 무기계약근로자로 전환시켜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약이 해지되던 시점 은희 씨의 근속기간은 2년에서 꼭 한 달이 모자란 23개월이었다.
7년 동안 방과 후 보육교사로 일했던 채성미 씨는 계약이 해지되지 않았더라도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학교 기간제 교사는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만의 문제라고?…비정규직은 공공기관에서도 서럽다
올해 7월 비정규직법 시행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대량 해고 사태는 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70여일에 가까운 싸움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법을 피해가려는 일부 기업의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4명의 여성 노동자의 사연은 공공기관 역시 법 적용을 회피하고 악용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무기한 농성을 시작하며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우리의 절규를 외면한 공공기관이고 비정규직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30일 오전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밝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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