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을 시사회에서 보고 웃다가 눈물 찔끔 흘렸다.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감동. 피식 웃겼다가 짠하게 찌를 줄 아는 이준익은, 확실히 휴먼 판타지 장르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명절용 기획영화를 만들 줄 안다는 얘기다. 지난해 <라디오스타>에 이어 다시한번 '음악'을 매개로 대동소이한 웃음과 감동을 버무린 영화를 만들어도, 또한 그것이 남루한 현실과 음악이라는 해방의 공간을 오가는 전형성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명절 영화의 주요 전략이라는 사실을, 그는 영악하게 재활용하고 있다. 인물들은 예의 루저들이다. 직장에서 잘리고 대책 없이 떠도는 실업자 기영(정진영), 역시 해고 당해 대리운전과 택배로 생계를 잇고 있는 성욱(김윤석), 중고차 매매로 돈은 짭짤하게 벌지만,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혁수(김상호)가 이 시대 중년 가부장의 초라한 면모를 더욱 가련하게 보이게 하도록 뽑혀 나온 대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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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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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다. 이들의 삶은 하나 같이 지리멸렬이다. 이 지지리 궁상들을 하나의 공통 분모로 묶는 것, 그것은 그들이 공유한 기억 속의 '활화산'이라는 밴드이며 음악에 대한 미련이다.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초라했지만 열정만으로 똘똘 뭉쳐 촌스럽게 락커 흉내를 냈던 그 시절을 그들은 애써 소환하려 드는 것이다. 오로지 그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걸림돌은 그들이 여전히 가부장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할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이다. 음악을 향한 이들의 치기는, 그래서 영화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말 그대로 치기일 공산이 크다. 이 자들은 기타라도 퉁기고 드럼이라도 칠 수 있지. 악기라고는 노래방 탬버린 밖에는 못 다루고, 김추자와 산울림의 노래는 흥얼거릴지언정, 공연장 근처엔 얼씬도 못해본 생활 전선의 투사들에게 <즐거운 인생>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차라리 즐겁고 행복할 건더기가 있는,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불가능을 가능한 것처럼 꾸미는 매체가 아니던가. 현실의 남루함은 최대한 리얼하게(때로는 전형적으로 때로는 약간 과장을 섞어서), 그 극복의 과정은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무기력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인서트 컷을 몇 번 넘긴 뒤, 이준익은 음악이 가진 본질적인 기능, 즉 위안과 해소의 판타지가 인물들의 비루한 배경과 합쳐지며 감동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검증된 솔루션의 위력에 여지 없이 편승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는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휴먼 판타지라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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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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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인사에 나선 배우들은 하나 같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행복했다고. 좋겠다. 부럽다. 천성이 까칠한건지 난 왠지 이런 영화를 보면 행복하다기 보다 씁쓸하다. 뜬금 없는 얘기지만, 의약 분업 이전의 약국에선 신경안정제를 의사 처방전 없이도 마구 줬다. 그 약을 먹으면 피로감이 풀리고 긴장감이 해소돼, 특히 가난한 이들이 많이 먹었다.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있다. 내 어머니는 신경안정제 중독의 후유증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신경안정제 같은 영화들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는 말을 잘 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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