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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에서 패한 이명박, 어정쩡한 '주인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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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에서 패한 이명박, 어정쩡한 '주인 노릇'

[분석] '개혁'이냐 '탕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명박 후보가 명실상부한 한나라당의 주인이 됐다. 당헌 상 대선후보는 선대위 구성, 선거운영, 재정 등 선거업무와 함께 당무 전반을 관할할 수 있다. 인사권과 재정권 등 실권이 사실상 이 후보에게 넘어가는 셈이다. 이 후보가 21일 당 최고위윈회의에 참석한 것은 본격적인 당무 장악과 대선체제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대선체제 정비는 선거대책위 구성과 당직개편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당'의 면모가 드러나게 된다. '화합'과 '탕평'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의 손길이 곳곳에 배인 당에 대한 '개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당심'에서 패한 이명박 후보로선 '화합'과 '개혁'의 조화가 쉽지 않다.

'집토끼'냐 '산토끼'냐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는 경쟁자이자 한나라당의 양쪽 날개였다. 이 후보가 온건 중도와 수도권, 30~40대, 화이트칼라층을, 박 전 대표가 보수, 영남, 고령층을 흡수하며 50%를 웃도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쌍끌이' 해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갈린 승패는 더 이상 양쪽 날개가 대등한 관계로 지속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이명박 후보가 접수한 한나라당은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데에는이견이 별로 없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폭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현재보다 중원으로 이동하는 게 유리하다. 지금까지 박 전 대표에게 쏠렸던 보수 표심이 박근혜 탈락의 후유증을 좀 앓더라도 이명박을 넘어 범여권으로 이동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집토끼'가 안전하다면 '산토끼'를 잡는 게 순리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21일 언론은 한나라당 경선의 '실질적인 승자', 혹은 '아름다운 패배' 등의 표현으로 박 전 대표를 띄웠다. 향후 한나라당 대선레이스 과정에서도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막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대개 일치한다. 한나라당의 절반이 아직도 박 전 대표의 손아귀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여건에선 '이명박 당'의 색깔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더욱이 이 후보가 일찍부터 후보가 되면 '당 개혁'에 착수할 뜻을 피력해 왔음에도, 당심에서 박 전 대표에게 패한 이상 '개혁 드라이브'는 동력을 얻기 힘들다. 섣부른 개혁은 박근혜 전 대표로 상징되는 영남ㆍ보수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개혁? 탕평?

이에 따라 당직개편과 선대위 구성의 성격은 '보수 표심 잡기'와 '중원 진입'의 갈림길에 선 이 후보의 본선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그러나 당선 직후부터 나온 이 후보의 발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후보의 난감한 처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우선 이 후보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한나라당이 그동안 국민에게 보여줬던 것을 여러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을 출발해야 한다"고 당 개혁 의지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는 "색깔이나 기능면에서 우리 모두 진지하게 검토해서 국민이 한나라당에 바라는 시대적 정신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국민의 기대에 가까이 다가가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극우 보수적 색깔을 빼고 중도와 실용적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만하다.

그러나 이에 따른 내부의 저항을 고려해 탕평과 화합을 곁들였다. 이 후보는 "나는 어떤 경우에도 경선을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포용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당선 직후에도 "나를 지지했던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이나 관계없이 편견 없이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도록 하겠다"고 '탕평인사'을 예고한 바 있다. 참모들도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을 두루 중용해 패자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화합은 부메랑 될 수도…

이에 따라 당분간 강재섭 대표를 필두로 한 현 지도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명박 캠프의 박희태 선대위원장은 지도부 개편 여부에 대해 "지금 항해 중인데 선장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선과정을 거치며 최고위원 상당수가 사퇴해 유명무실해진 강재섭 지도부도 스스로 물러날 뜻은 전혀 없어 보인다. 강 대표는 경선 개표 전이던 지난 19일부터 "추석 직후 탕평의 선거대책본부를 발족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참석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큰 길을 가려면 외부세력도 포용하고 우리 내부도 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적어도 추석까지는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을 추스르는 한편 인적 쇄신 등 고강도 개혁은 없을 것이라는 암시다.

이에 대한 당 내의 반응은 엇갈린다. 선거체제로 전환되려면 어차피 시간이 필요하고 기존의 지도체제도 선대위에 흡수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수긍론이 한 편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박근혜-강재섭 '투톱' 선대위원장 카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강 대표의 발언은 '기득권 지키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론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선대위원장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박 전 대표에게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해 놓긴 했지만 이것이 성사되려면 공천권과 정책, 인사에서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면 한나라당의 '한지붕 두가족' 상황은 총선까지 이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서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사이에는 '제식구 챙기기'로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전 대표와 기존의 한나라당을 끌어안는 '화합론'이 당장은 이 후보의 통 큰 리더십으로 비쳐질지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집안싸움'과 '개혁포기'라는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방안이다. 경우에 따라선 보수기득권이 온존한 한나라당이 보다 중원으로 진출해야 할 이 후보의 대선 전략에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절반의 지지 속에 당의 주인으로 등장한 이 후보의 향후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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