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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개로 바람을 가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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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개로 바람을 가르던 시절”

[새책] 만화로 재탄생한 안도현 시인의 <짜장면>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를 소재로 사랑과 열정을 노래한 한 시 ‘너 에게 묻는다’로 널리 알려진 안도현 시인이 지난 2002년에 출간해 스테디셀러가 된 동화 <짜장면>이 만화전문 출판사인 ‘행복한 만화가게’를 통해 만화라는 새 옷을 차려 입고 우리들 곁으로 다시 찾아왔다.

<사진1>

만화의 전체적인 틀은 안 시인의 동화 ‘짜장면’과 동일한 성장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어린시절부터 늘 반에서 1등만 하다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해야 할 시기인 17살에 가출을 하고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후 폭주족 생활을 하는 일탈을 경험한다.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고 양파를 까면서 첫 직장생활(?)을 경험하기도 하고 건너편 미장원의 ‘시다’와 첫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모범생으로 평범하게 성장한다.

주인공은 서른 즈음의 직장인이 됐을 때 어린시절의 ‘일탈’에 경험한 낭만과 아픔들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전부’였음을 쓸쓸히 고백한다.

최규석, 변기혁 두 젊은 만화가는 자신들의 손을 통해 재구성된 <짜장면>을 통해 문학작품을 다른 장르로 재구성 할 때 생길 수 있는 상상력의 제한을 피하면서도 원작의 장점과 감동을 극대화하는 어려운 작업을 무난히 이뤄냈다.

작품이 지니는 감성적인 표현을 그림으로 구체화 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들은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작품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

안 시인이 주인공의 일탈이 끝났음을 설명한 “손끝에서 미세하게 양파 냄새가 배어 있었다. 양파는 가슴 속에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존재였다. 짜장면 속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양파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짜장면 냄새가 된다. 내 손끝에 남은 양파 냄새도 곧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다”는 부분을 선글라스를 낀 체 하늘을 보는 주인공의 지친 모습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 만화가 단순한 ‘각색판’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지닌 창작물로 여겨지게 한다.

특히, 두 만화가는 작품 속에 스며있는 삐삐, 짜장면, 변두리 동네골목 같은 아날로그적 정서와 에피소드들이 주는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선택하지 않고 수채화풍의 그림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그려냈고 그 정성이 매 칸 마다 신선한 묘사로 눈을 즐겁게 한다.

또한 만화만이 줄 수 있는 컷과 여백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원작속에 담긴 의미의 함축과 극대화도 적절히 이뤄내고 있다.

본문 속 그림체 자체도 최근 유행하는 카툰이나 에세이 형식과는 다른 정통적인 이야기체 만화의 세밀함과 힘을 복원시키고 있고 각 장의 앞뒤로 붙인 안 시인의 글에 삽화형식으로 어우러진 그림들은 그 자체로 인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다.

안 시인도 작가의 말에서 “만화 <짜장면>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것 같다”며 “그림이 보기 드물게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고 이 책에 흡족함을 나타냈다.

18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덮으며 가장 여운을 주는 대목은 맨 처음 1장 앞에 써있는 글과 그림이다.

비상인지 추락인지 알 수 없는 자세로 하늘을 가르는 소년의 모습 옆에 “내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내 날개로 바람을 가르던 시절···· 열일곱, 열여덟··· 내 나머지 인생은 모두 그 시절에 대한 부연 설명일 뿐 이다”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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