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비정규직의 해고나 외주화 문제가 중소기업에서 일어났더라면 어땠을까?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혹은 노조가 있더라도 별다른 문제제기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중소기업 종사자 늘어만 가는데…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의 핵심에는 단순히 정규직 대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라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
2005년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자료에 의하면, 현재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의 99.9%, 전체 사업체 고용의 88.1%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인 1995년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의 99.3%, 전체 사업체 고용의 74.6%였던 것을 생각하면, 중소기업의 비중은 사업체 수나 고용비중에서 훨씬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소기업에 고용된 종사자는 전체 종사자의 63.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더구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67.5%가 30인 미만의 소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반면,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19.7%에 머물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 가운데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 고용된 비율은 불과 7%에 불과하고 93%가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것은 중소기업, 영세기업들이 국내외 경쟁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임금이 더 싼 비정규직의 사용으로 부분적으로 덜어보고자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소기업 정규직도 '정규직'일까?
정규직 근로자라고 모두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체에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들은 100인 이상의 사업체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보다 월 평균임금이 낮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간의 격차 못지 않게 대기업 대 중소기업 사이에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며 중소기업의 노사관계가 매우 조화롭고 이상적인 것으로 미화한 적이 있었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중기업은 물론 소기업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가 크다. 2006년 현재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65.4%에 머물고 있으며 5 - 9인 사업체의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54.0% 수준이었다. 2006년 현재 월 근로일수에서도 대기업은 21.3일, 중소기업은 23.1일로 월 1.8일 차이가 있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특별급여, 법정 외 복리비, 후생복지에서도 대기업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노동현실은 조화론/미화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중소기업의 고용관계가 착취적이며, 고한노동(sweatshop)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처우개선 없이 사회통합·선진국은 없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과 노동조건, 복지헤택 등에서 큰 격차가 있다. 더구나 상당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매어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자본장비율의 차이가 크고 생산성 격차가 나는 우리 현실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시장 내 지위와 관계가 갖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에게는 교육과 훈련의 기회가 대기업보다 적은 것은 물론 기업 내부에서 지식과 기능의 체계적인 전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인적자원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제품과 공정의 개선을 통한 작업장 혁신이 지체되며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에서는 낮은 임금과 뒤떨어진 근로조건과 기업복지 속에서 근로자들은 잦은 이직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상당수 중소기업에서 이런 악순환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몇몇 사례연구를 해 보면, 일부 혁신적인 중소기업들에서 근로자들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약간 좋지만, 수익성이 좋은 중소기업들에서 노조의 압력이 없거나 약한 상태에서 근로자들에게 비교적 괜찮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직무나 직업에 기초한 횡적인 노동시장이 발달하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기업 내 노동시장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수직적 원·하청관계와 횡적 노동시장의 미발달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의 분단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노동시장의 특성은 기업별 노조의 경제적 토대가 되는 동시에 중소기업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공정하지 못한 격차를 낳은 요인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처우개선 없이 사회통합과 선진국을 말할 수 없다.
중소기업, 더이상 '사람이 없다' 하소연만 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높은 고용비중, 낮은 임금과 처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소기업 근로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끈 일이 적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복지, 직업훈련 등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 많이 논의된 것에 비해 실제 이루어진 것은 적은 편이다.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을 호소하지만, 역으로 중소기업들이 재직 중인 근로자들이 이직을 하지 않고 자기미래를 설계하고 기업에 몰입할 수 있게 인사노무관리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노조로 조직된 비율은 낮지만, 중소사업체에도 노사협의회는 상당수 설치되어 있다. 30~99인 사업체의 58.2%, 100~299인 사업체의 74~ 80%에 노사협의회가 설치되어 있다. 무노조 중소사업체에 설치된 노사협의회는 정보공유, 고충처리, 의사소통, 근로자의 다양한 이해 대표와 조정, 복지개선 등을 위해 비교적 충실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들이 근로자 처우개선이라는 면에서는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노사협의회를 통해 근로자들과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는 좋은 채널이 갖춰져 있다.
이런 채널을 이용해 이제 노조와 중소기업 사용자, 그리고 우리 사회가 중소기업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과 처우개선 통해 근로자들이 헌신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저생산성, 저임금, 이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 이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사용자, 노조 그리고 우리 사회의 관심을 목말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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