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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보는 사회? '미드' 말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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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보는 사회? '미드' 말하는 사회!"

[토론회] "미디어 프로그램, 돌 던지기와 무조건 찬사는 그만"

"'미드' 좋아하세요?"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 '미드'(미국 드라마의 준말)는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번쯤 입에 올리는 기호가 됐다. <프리즌 브레이크>, <그레이 아나토미>, <24>, <CSI> 등 숱한 화제작들의 이름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미드'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은 '미드족'이라 불린다.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를 밤새도록, 혹은 온종일 시청하느라 생활이 망가졌다는 일명 '미드폐인'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 성인의 40.1%가 '미드'를 보고 있으며 그중 20대가 54%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이미 오래전 케이블TV를 장악한 '미드'는 지상파 방송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하고 있다. 그러자 케이블TV에서는 'CSI:DAY'와 같은 '1일 미드편성'까지 시도하고 있는 태세다. 지난 7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는 올 한해 지상파 방송 및 케이블·위성TV가 들여온 전체 미국 영상물 가운데 드라마의 비중이 55.3%로 지난해 점유율 1위였던 영화(56.7%)를 따돌렸다. 도대체 이 열풍은 무엇 때문일까?

13일 오후 서울 연세대 성암관에서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제13회 문화콘텐츠포럼의 주제 '미드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시도됐다. 문화연대는 "활발히 이루어지는 영화 비평 문화와 달리 미디어 프로그램에 관한 비평 담론은 매우 부진한 상태"라며 '미드 열풍'을 포럼의 주제로 삼은 계기를 밝혔다.

제2의 전성기 맞은 '외화 시리즈'…공은 TV 아닌 인터넷에
▲ 1989년 12월 17일 TV프로그램. 붉은 원은 정규 외화 프로그램이며 파란 원은 일회성 외화 프로그램이다. ⓒ프레시안

이날 발제를 맡은 강보라 씨(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4학년)는 "2006년 한국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된장녀'였다면 2007년의 키워드는 '미드'"라며 "지금의 미드 열풍이 오래전 외화 문화와 별개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해외 드라마의 전성시대는 2007년이 아닌 1980년대부터였다. 당시 <600만 달러의 사나이>, <코스비 가족 만세> 등이 지상파TV 황금시간 대에 고정적으로 편성됐다.

이후 1990년대 접어들면서 국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해외 드라마 편성은 감소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천재소년 두기>, <천사들의 합창>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리즈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케이블TV 서비스가 시작되며 상황은 다시 한번 반전한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케이블TV를 중심으로 해외 드라마의 인기가 부활했다. 인터넷에서는 해외드라마 동호회가 급증했고 20~30대 여성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렌즈>, <엘리의 사랑만들기>, <섹스 앤 더 시티>, <윌 앤 그레이스> 등 여성 취향의 시리즈들이 인기를 얻었다.

강보라 씨는 "인터넷을 통한 프로그램 공유가 손쉬워진 2004년 이후 미드족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2007년 현재, 외화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존 인기 시리즈들은 한층 탄력을 얻었고, 미국의 인기 시리즈들은 실시간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마우스 포테이토'와 'CSI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 미국인들이 과학적 범죄 검식이 3일이면 된다는 환상을 갖게 됐다는 'CSI 현상'을 낳은 <CSI> ⓒ프레시안

강보라 씨는 "주목할 점은 한국이 아닌 미국 현지에서도 드라마 열풍이 뜨겁다는 점"이라며 "탄탄한 이야기의 구조나 다양한 장르 시도에 더해 미국 드라마가 가진 치밀한 전략과 마케팅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TV가 아닌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은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간식을 먹는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 족의 등장 △ 미국인들이 과학적 범죄 검식은 3일이면 해결된다는 환상을 갖게 됐다는 'CSI 현상' △ 추리극 <로스트>의 내용상 의문을 둘러싼 팬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로스트 팬덤'(LOST fandom)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그는 "전통적으로 영화를 연구해온 프랑스에서도 최근 미국 드라마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며 미국 드라마의 강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보라 씨는 미드의 강점을 △다이얼로그, 플롯작가, 지문작가, 캐릭터 작가 등 수백 명의 전문인력이 동원되는 점 △드라마 한편이 끝나기 전 범인이 누군지 안 알려주는 '클리프 행어(cliffhanger)', 장소만 바꿔서 똑같은 이야기를 구사하는 '스핀오프(spin-off)제' 등의 마케팅과 구성에서 치밀한 작전을 구사하는 점 △톰행크스나 스필버그와 같은 유명 영화감독들, 헐리우드 감독들도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등 슈퍼프로듀서들이 속속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미드 현상'의 명과 암…드라마 소비시대 논의 본격화 돼야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드' 현상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미국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덕현 씨는 "이 같은 현상의 반대편에는 상대적으로 다운로드 받은 미드에 밀려 시청률이 떨어지는 한국 드라마가 있다"며 "같은 장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수용자들의 욕구불만이 미드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에 위기이자 동시에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게 미드 열풍"이라며 "사전제작제, 작가 인력 확충 등 할리우드의 탄탄한 전략에서 한국 드라마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 2007년 대중문화의 화두로 '미드'가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프리즌 브레이크> ⓒ프레시안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이종님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미디어에 의존하는 여가시간이 증가했다는 점도 미드 열풍의 한 원인이라고 본다"며 "주변의 반응을 봐도 미드에 대한 높은 만족도는 양질의 드라마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미드는 9.11 테러 이후 나타난 미국관, 영웅관, 미국식 소비패턴 강화, 성에 대한 개방적 논의 등 '다양성'으로 무장된 고도화된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 중심의 이미지를 생산해나가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자국민 문화가 소외돼 가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미드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노동환 씨(중앙대 신문방송학 석사)는 "최근 동호회 내에서는 9.11 테러 이후 바뀐 미드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4>는 9.11 이후 테러에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나가는지에 대한 자기들의 방식을 보여줬고 <히어로>는 미국 사회에서 소시민들이 어떤 역할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큰 맥락"이라며 "이 두 드라마는 미국이 자문화중심주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보라 씨는 "과거 드라마는 TV를 끄면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 드라마 속 액세서리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등 문화는 바뀌고 있다"며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마냥 찬사를 보내거나 돌만 던질 것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재생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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