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개봉예정인 정윤수 감독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가 개봉전부터 조용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대 젊은이 두 커플의 엇갈리는 사랑과 연애담을 그린 이 영화는 오랫만에 나온 국내 웰메이드(well-made) 작품이라는 평.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또 이 시대에 있어 사랑이 갖는 함의와 그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는 평이다. 이 영화를 보는 네가지의 키워드를 영화저널리스트 최광희 씨의 시선으로 풀어본다. - 편집자 |
. 키워드1. 남의 떡이 커 보일 때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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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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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이고 당찬 성격의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에게 다정다감한데다 유머 감각까지 갖춘 호텔리어 민재(박용우)는 버거울 정도로 좋은 남편이다. 남 부러울 게 없다. 자상한데다 섹스도 잘한다. 우연히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된 재수없는 기업인 영준(이동건)은 남편 발톱에 낀 떼만도 못한 녀석인 줄 알았다. 티격태격 하다 보니, 아! 이 자식 묘한 매력이 있는거다. 뭐랄까, 톡 쏘는 맛이 있는 홍탁 같은 놈이다. 유나도 가끔 달콤한 브라우니가 질릴 때가 있는 것이다. 홍탁도 걸쭉한 막걸리랑 합쳐지면 제 맛인데, 유나의 성격이 딱 막걸리다. 사고가 안나면 이상하다. 게다가 둘의 배우자들은 저 멀리 홍콩에 출장 가 있다. 타이밍 굿~! 제 떡이 아무리 맛있어도 가끔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다.
. 키워드2. 멀리 가면 더 치명적이다 영준의 아내이자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는, 남편 영준에겐 언감생심인 자상함의 지존 민재에 순식간에 끌린다. 같은 시각, 두 사람의 남편과 아내가 서울에서 데킬라 취기에 얽혀 들어 실랑이를 빙지한 짝짓기 모드에 돌입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둘은 벌써 홍콩에서 훈훈한 짝짓기에 들어간다. 거칠 게 없다. 보는 사람도 없다. 홍콩 거리의 이국적 풍광과 끈적끈적한 공기가 에로스를 부추긴다. 역시, 멀리 오면 더 치명적이 된다.
. 키워드3. 유유상종에서 부의 재분배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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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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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자존심 강한 전문직 종사자들이지만 유나와 민재 부부에겐 컴플렉스가 있다. 소박한 살림 때문이다. 특히 유나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계륵이다. 그런데 영준과 소여는 있을 거 다 있는 애비 에미 잘 만난 귀족들이다. 버려도 버려도 남을 게 있는 복 받은 녀석들이다. 그만 관계를 청산하자는 민재에게 소여는 말한다. "난 다 버릴 준비가 돼 있는데..." 민재의 응수, "난 너무 어렵게 얻은 것들이라 버릴 수가 없어." 유유상종으로 커플이 된 두 부부, 정신 차리고 보니 짝이 바뀌어 있다. 부자 여자와 가난한 남자, 부자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짝이 됐다. 에로스는 가끔, 부의 재분배를 이룬다. 양극화의 극복! 나름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말이다(너무 갖다 붙였나?).
. 키워드4. 지금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는 건 불행이고 모순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갑남을녀라면 제도의 힘에 눌려 끙끙거리며 버텨낼 이 불행과 모순을 픽션의 힘으로 개선한다. 그러나 예의 상처를 남긴다. 이렇게 된 이상, 적어도 앞날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유나도 민재를 사랑했고, 그래서 살았다. 소여는 차갑고 냉정한 영준이 좋았다. 그래서 함께 살았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얻었다. 그렇다고 이 전의 사랑을 완전히 청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살아서 희미해진 사랑도 있지만, 살아서 생긴 사랑(흔히 그걸 의리라고 한다)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딜레마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없다. 다만, 청산할 마음이 없다면, 그리고 결혼 제도 안에서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꿋꿋하게 자문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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