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는 한국인에게는 제5공화국 때의 아웅산 묘지 폭발사건으로 알려져 있거나,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군부독재정권의 폭압정치로 학살-고문-강제노동-강간 등을 저지르고 있고 극도로 경제가 피폐해진 국가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로 꼽히지만 한때에는 쌀과 티크, 보석 수출로 유명했던, 자원은 풍부하고 유서 깊은 문화가 아름다운, 풍요로운 국가였다.
한국에는 버마에서 온 이들이 3000여 명 정도 있는데, 이들 중 일부가 비록 조국을 떠나오긴 했지만 자국의 민주화를 위해 규모는 작지만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했고, 그들이 주체가 되고 버마의 민주화에 관심 갖고 있는 한국의 사회단체들과 함께 매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프리 버마(FREE BURMA) 캠페인'이라고 하는 이 장기 캠페인이 8월을 맞아 좀 특별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8월은 버마인들에게는 물론, 버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이 특별히 기억해야 할 달이며, 8월 8일은 그 정점이다.
8888. 1988년 8월 8일
버마인들은 8을 상서로운 숫자로 여기고 있다. 이 상서로운 8이 무려 4개나 겹쳐 있는 이날은, 그러나 최고로 상서로운 날이 아니다.
흔히 8888로 알려져 있는 이 날은 역설적으로 버마인들에게 이루어지지 못한 희망과 슬픔과 분노의 상징이다. 1988년 그해는, 버마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버마민중들의 시위로 전국이 소용돌이치던 해였다.
군부가 1962년에 집권한 이래 폭압정치로 각종 인권 탄압이 자행되던 버마에 경찰의 과잉 시위진압으로 호송 중이던 41명의 학생이 질식사한 어처구니없는 '피의 금요일'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가 1988년 3월이었다.
이를 계기로 버마 민중들은 군부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고 곧 전국적으로 시위가 퍼져나갔다. 시위는 달을 넘겨도 지속되어 그해 6월을 거쳐 8월에는 버마의 전 국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버마민중들을 탱크와 장갑차로 무자비하게 밀어붙였고, 8월 8일 최소한 2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시위는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들불처럼 번져나가 9월 14일에는 수도 양곤에서 100여만 명에 달하는 버마민중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1988년의 대규모 항쟁으로 최소 2천여 명에서 최대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다행히 목숨을 건진 시위참여자들도 대부분 정치범이 되어 오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확한 진상규명은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진 군부의 폭압정치로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정확한 사망자 수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버마인들은 이 날을 기려 8888이라고 불러왔다.
8888 이후 버마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수백만 명의 버마인들이 자국을 빠져나와 해외로 흩어졌다. 이들은 해마다 8888이 되면 이날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치르고 그날을 되새긴다.
한국에 있는 버마인들 역시 매년 8월 8일이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이날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을 해왔다.
8888 19주년이 되는 2007년 8월에는 8일의 기자회견과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버마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전'을 열고 8월 11일 저녁에는 버마민주화운동을 후원하는 후원의 밤이 열린다.
이 준비를 위해 한국에 있는 버마이주노동자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밤에는 동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준비하고 후원의 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버마인들에게 한국에서도 8888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침 5.18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 중이다. 버마의 8888은 흔히 한국의 5.18과 비견된다.
'화려한 휴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5.18과 같은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아직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버마의 현실을 한번쯤은 생각해주시기를 바라며, http://cafe.daum.net/mmwc나 http://cafe.naver.com/freeburma로 한번 접속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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