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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삶에 보내는 담담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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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삶에 보내는 담담한 위로

[뷰포인트] 같은 이름을 가진 세 여자의 삶, <허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JJ-Star상을 수상한 <허스>가 지난 24일 화요일 기자시사회를 가졌다. 상영 전 김정중 감독과 주연배우 김혜나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이틀 전 급하게 귀국했다는 김정중 감독은 이 영화가 독립, 저예산 영화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고, 주연을 맡은 김혜나 역시 '작은 영화에 대한 더 큰 애정'을 주문했다. <허스>는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김정중 감독이 직접 설립한 제작사인 바다엔터테인먼트와 국내의 프리콤프로덕션이 공동제작하고 스폰지가 배급하는 영화다.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처럼 전체 분량을 미국에서 촬영하며 한미공동제작의 형태로 제작하며 중요 스탭 일부를 제외하면 현지의 스탭들로 제작이 진행됐다. 윌 윤 리와 칼 윤, 수지 박 등 현재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가 익히 알 만한 교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허스 ⓒ프레시안무비
<허스>는 각각 로스엔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지나'라는 같은 이름의 세 여자의 삶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김혜나가 로스엔젤레스에서 20대의 지나를, 엘리자베스 바이스바움이 라스베이거스에서 30대의 자니를, 그리고 수지 박이 알래스카에서의 40대의 지나를 연기한다. 이 지나는 세 명의 각각 다른 인물일 수도, 한 명일 수도 있다. 세 명이건 한 명이건, 그리고 장소가 LA건 라스베가스건 알래스카건, 지나(들)의 삶은 고단하고 외롭기 짝이 없다. 한 끼 밥을 위해 먹기 위해 몸을 파는 이 여자(들)는 오늘도 무거운 수트가방을 끌고 계속해서 걷고 또 걸으면서도, 배고픔보다 외로움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고개를 돌린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팔았던 20대의 지나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 채 LA의 길바닥을 헤매면서도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될 거라 철썩같이 믿고있다. 섹스 후 꼭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30대의 지나는 콜걸로 살아가며 우악스럽게 F워드를 연발하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꿈과 의미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꿈이 눈앞에서 깨지는 것을 쓸쓸히 본다. 이제 알래스카의 눈밭을 향해 가는 40대의 지나는 악다구니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능글맞은 여유와, 가장 밑바닥까지 간 채 떠오를 줄 모르는 자의 절망과 상처를 몸에 가득 안고 있다. 아이스크림 대신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술이다. 한시라도 맨정신으로 세상을 보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손은 끊임없이 술병을 향해 뻗는다. 심지어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 순간조차. 20대의 LA의 지나가 루카스와, 30대의 라스 베이거스의 지나가 케이와 만나게 되면서도 그들의 관계에서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어느 쪽 지나든 길 위의 사람,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40대의 지나가 결국 알래스카로 오는 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생애 마지막,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을 위해 알래스카를 찾은 고단한 지나의 여정이, '마침내 그녀를 찾아와 준' 오로라로 인해 한순간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그 순간, 열심히 뛰면서 살고 있지만 남모래 포옥, 한숨을 내쉬며 외로움에 어깨를 살짝 떨고 있을 관객들에게도 기적같은 위로를 선사한다. 마치, 에릭 로메르가 <녹색광선>을 통해 그러했던 것처럼.
허스 ⓒ프레시안무비
영화는 신인감독 답지 않게 매 장면마다 안정감이 넘치는 화면으로 이어지며, 세 명의 (혹은 한 명의) 지나와 그녀가 만나는 이들의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담담하게 잡아낸다. 특히 알래스카 편에서 40대의 지나를 맡은 수지 박의 열연은, 지나의 삶을 그토록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무엇으로 표현해낸다. 게다가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아픔을 가득 담아 부르는 '어디에 가고 있을까'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못할 정도. 이 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된 만큼, 몇몇 장면들은 '필름으로 찍었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준다. 지나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스크린 바깥을 살고있는 지금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고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단함을 직시하는 것이 진정으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시작이 아닐까. 8월 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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