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혼잡'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민중기 부장판사)는 공무원노조, 교수노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이 결성한 공무원·교수노조합법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교통에 불편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취소 청구소송'에 대해 공대위 측의 승소를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집회 금지는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된다"며 "다른 수단을 다 써본 후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교통 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 자체를 원천 금지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며 재량권을 넘어선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집회 장소가 정부종합청사 앞 정문이 아니라 정문 옆 인도여서 청사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통행을 직접적으로 방해하지 않고, 참가인원이 50~100명으로 비교적 소규모인데다, 집회 시간이 정오부터 오수 3시까지로 극심한 교통 혼잡이 있는 시간대가 아닌 점이 인정된다"며 "집회를 금지해야 할 정도의 교통 장애가 초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집회로 예상되는 일부 교통 소통의 장애는 참가 인원 및 집회 시간, 방송용 차량의 대수 제한 등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방법을 부과해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경찰서 측은 최후의 수단인 집회 금지 처분을 내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찰의 집회금지 처분 이유 중 하나인 '정부종합청사는 국가 주요 시설'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국가 주요 시설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장소에 포함되지는 않는다"며 "해당 집회를 제한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공대위는 지난 4월 '공무원노조 탄압 행정자치부 규탄대회'를 열기로 하고 종로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했으나, 종로경찰서는 "집회 장소가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 해당하고 주변 교통에 심각한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며 집회 금지 통보를 했다. 집회 금지 통보를 받은 공대위는 서울경찰청에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한편 한미FTA 등 진보단체의 집회에 대한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던 터여서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유지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경찰의 무분별한 집회 금지 처분에 일침을 가하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일단 금지하고 보자는 경찰의 반헌법적인 태도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의 자유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은 "경찰의 집회 금지 사유가 너무 광범위하고 규정이 모호해 경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하는 경우가 많고, 집회 금지 통보에 대한 경찰의 재량권이 너무 커서 '신고' 대상인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경찰의 재량권을 법률에 명확하게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댓글 0